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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피카

네덜란드 흐로닝언에서 자전거로 생활하던 이야기

by 저피 2020.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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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흐로닝언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것은 다름 아닌 자전거였다. 그곳에서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가 자전거를 탄다. 없이 살기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좋은 환경이 없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흐로닝언 자전거

 

등하교 시간이면 도심부로 들어가는 사거리 신호등에 수십 대가 촘촘히 붙어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 곳곳의 자전거 거치대는 사람들이 자물쇠를 잠그다 만난 지인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들로 가득했다. 그곳에 살며 매일 수백 대의 자전거를 스쳤다. 걸음보다 빠르지만 자동차보다 느린, 사이의 속도를 가진 매력적인 도시로, 자전거가 없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네덜란드 흐로닝언에서 자전거를 많이 타는 이유

흐로닝언의 신호등에는 비를 감지하는 센서가 있어, 우천시 자전거에 신호 우선권을 준다. 게다가 자전거 전용도로에는 열선이 설치되어 있어 겨울에도 바닥이 얼지 않는다.

 

1970년도에 차량이 급증하여 도로 계획을 다시 세울 , 젊은 시의원이 역으로 찻길 대신 자전거 이용 활성화 캠페인을 벌였고, 그로 인해 독특한 도시 도로와 자전거 문화가 이루어졌다. 그래서인지 흐로닝언은 전체 교통의 60% 이상을 자전거가 차지하고 있으며, 주민 1인당 1.4대의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다. 정도면 걷는 것만큼이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모두가 타는데 이유가 없었다. 도심의 중고가게에서 샀던 자전거는 카키색의 클래식한 자전거였다. 그럴싸한 외관만 보고 정했다. 물론 가격이 매우 저렴하기도 했지만. 내게 성능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고, 가게에서 사는 만큼 믿을 있었던지라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타면 탈수록 마음에 드는 부분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친구들의 자전거와는 다르게 번도 빠지거나 끊어지지 않았던 체인의 견고함이 좋았고, 힘을 들이지 않고도 가볍게 돌아가는 기어변속기가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U자로 움푹 파여 있는 탑튜브(몸체의 윗부분) 제일 좋았는데, 내리막길을 달릴 때면 페달에서 발을 떼어 탑튜브 위에 포개어 놓고 썰매를 타듯 미끄러져 내려가는 기분을 만끽했었다.

 

 

 

자전거에도 남자용, 여자용이 있다?

그러던 어느 친구가 내게 U자형 탑튜브는 치마를 입는 여성을 위한 디자인임 알려줬다.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친구가 나를 놀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던 것이 가장 이유였다. 도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전거는 굴러가기만 하면 되는 이었다. 아직 자본이나 기호의 때가 끼지 않은, 매우 생활적이고 기능적인 물건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 어디서나 자전거였다. 모두가 그랬다. 심지어는 클럽을 때도 자전거를 탔다. 빼입고 한껏 멋을 부리는 그곳 대학생들도 다름없었는데, 그러고는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선했다. 만큼 놀고 나면 자전거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나라고 다를 없어 음주운전이 생활화되었다.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술을 마시다가 자전거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 시청 광장에 자전거를 묶어둔 , 바에 들어가 만취가 때까지 마시고는 새벽하늘이 밝아질 때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위태롭게 기숙사로 돌아왔다. 모습이 스스로도 이상 우스꽝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을 비로소 흐로닝언에 적응이 같았다. 다음날이면 똑같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갔고, 수업이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 슈퍼마켓에 들러 저녁거리를 샀다.

 

같은 자전거를 운동 삼아 타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다. 곳을 정해두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운동을 하고 있는, ‘생활 운동까지가 좋았다. ‘진짜 운동으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 자전거를 타기가 싫었다.

 

내게 자전거의 재미는 방향을 조종하는 상체에 있는데, 그때부터는 페달을 밟는 하체에만 정신이 쏠렸기 때문이다. 잠이 드는 찰나에 집중하면 잠이 오고, 모기 물린 자국을 보면 순간부터 간지럽듯이, 운동이라는 느낌이 들면 이내 다리가 아파왔다. 요컨대 나의 자전거는 지극히 생활용이었다.

 

 

 

자전거와 여성운동의 관계

자전거는 여성운동에 기여한 바가 크다

여성 인권 운동가 수잔 B. 앤터니는 자전거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자전거만큼 여성을 해방시키는데 이바지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여성을 때마다 흐뭇하죠. 안장에 앉는 순간 여성은 자전거로부터 자신감과 자립심을 얻습니다. 그러곤 앞으로 나아가죠, 자유로운 여성으로서.”

 

공간 지배력은 힘이다. , 개인이 활용하고 통제할 있는 공간의 규모가 커질수록 사람이 갖는 잠재력 또한 커지는 법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차를 사고 뒤부터 낚시라는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되거나, 지방 곡곡으로 여행하며 견문을 넓힌다. 언제든 멀리 도망칠 있기 때문에 여유로워지기까지 한다.

 

이렇듯 자전거도 결국엔 개인의 생활 반경을 넓히는 도구인 것이다. 게다가 다른 이동수단에 비해 요구하는 기술이나 소유하기 위한 비용 측면에서 장벽도 매우 낮다. 내게 자전거는 수잔 B. 앤터니가 말한 효용을 주는 도구에, 조종을 하는 재미를 조금 가한 정도다. 레저로써의 매력은 크게 느껴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흐로닝언에 살기 전에도 그랬듯, 그곳을 떠난 지금은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생활용으로 타기 그리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대신에 스쿠터를 타고 다닌다. 그게 내게는 생활적인 기능 측면에서 훨씬 낫다.

 

하지만 브레이크 와이어를 바꾸는데 흐로닝언에서 자전거 값이 들고, 주차장 옆자리의 멋진 엠블럼이 박힌 으리으리한 오토바이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운전을 하거나 신호를 기다릴 누군가와 인사를 나눌 일이 없고, 사방의 얼굴들은 짙은 태닝유리로 막혀있다. 여러모로 자전거로 생활하던 때가 무척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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