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러웠다. 거리 곳곳에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원래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고 하는데, 인도에는 버리는 사람만 있고 치우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위생과 공중 보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념이 공고해야 한다고 배운 탓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버리고 있었다.
인도 자이뿌르에서 쓰레기를 보다가...
매년 약 5천억 개의 비닐봉지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잠시 사람들에 의해 사용된 비닐봉지가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데에는 수백 년이 걸린다.
13억 인구가 무심코 길바닥에 버려 온 쓰레기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리고 그 쓰레기들이 완전히 사라져 다시 회복하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이 걸릴지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을 초월했다.
거리에 즐비한 쓰레기들에 익숙해질 즈음이었다. 자이뿌르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3시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날씨가 무척이나 추웠다. 그렇다고 기차역에 난방시설이 작동하는 것도 아니었다.
안이나 밖이나 추운 건 매한가지라 조금이라도 더 구경하고자 친구와 거리를 거닐었다.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많았다. 수십 명의 노숙자들이 추위를 견디려고 다닥다닥 붙어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노숙자들이 잠을 청하는 거리 반대편에는 불을 지펴놓고 몸을 녹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잠을 자다가 너무 추워서 깬 노숙자들이었다. 나와 내 친구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불을 쬐기 위해 다가갔다. 우리는 마치 추위를 견디기 위해 원형으로 허들을 하는 펭귄 무리 같았다.
공짜로 불을 쬐는 게 눈치가 보여서 나와 친구는 가방에서 태울만한 것들을 주섬주섬 꺼내 화염 속으로 던졌다. 사용한 기차표,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챙긴 팸플릿 등 필요 없어 보이는 종이류를 모조리 태웠으나 충분하지는 않았다. 이내 불씨가 조금씩 꺼져갔다.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며 그만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같이 몸을 녹이던 사람 중 한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에 있는 쓰레기를 한 움큼 쥐어갖고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나와 친구도 거리에 나뒹굴고 있는 쓰레기들을 주워 불 속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내 가방엔 더 이상 태울게 없었는데 도처에 불씨를 살릴 수 있는 쓰레기가 많은 게 묘하게 다행스러웠다. 쓰레기를 주워 불속으로 던지는 게 꼭 거리를 청소하는 것 같아 또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쓰레기란 원래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때 쓰레기는 쓰레기가 아니었다.
인도 자이뿌르에서 쓰레기를 태우다가...
한숨을 자아내던 거리의 쓰레기들이 결국 내 몸을 녹여주는 모습을 보며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메리칸 뷰티>라는 영화에서 리키는 제인에게 자기가 찍은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며 동영상 하나를 보여준다.
비닐봉지가 바람에 날리는 장면이다. 비닐봉지는 땅에 닿을라 치면 바람을 타고 다시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리키는 제인에게 ‘나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어떨 때는 세상에 아름다운 게 너무 많아 힘들다’고 말한다.
리키처럼 나에게도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쓰레기가 말을 걸고 있었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나는 그때 거대한 자연의 흐름 속에 흘러가고 있는 작은 입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 혹은 불길에 태워지는 거리의 쓰레기들처럼.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분명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지구는 후세에게 남겨주기 부끄러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자이뿌르에서의 경험은 내가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해보게끔 만들었다.
어떠한 문제에 대해 단언하기에 그 문제는 생각보다 굉장히 복잡하다는 것. 쓰레기를 보며 한숨을 내쉴 때 나는 그 쓰레기를 태워 몸을 녹이는 거리의 노숙자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마치 우리가 결코 모든 걸 알지 못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여담이지만, <패밀리가이>라는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에서 <아메리칸 뷰티>의 비닐봉지 장면을 패러디한 적이 있다. <패밀리가이>의 주인공 피터가 날아다니는 비닐봉지를 촬영하며 세상이 너무나 경이롭다고 감탄하자 하느님이 하늘에서 피터를 향해 외친다. “그건 그냥 쓰레기가 바람에 날리는 것뿐이야! 네 순환기관이야말로 얼마나 복잡한지 알기나 해?” 맞는 말이다. 거대한 흐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부터가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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