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는 ‘가는 날이 장날이다’라는 말이 너무 헷갈렸다. 누군가는 공교롭게 안 좋은 일을 맞닥뜨렸을 때, 또 누군가는 뜻밖에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이 말을 했다.
그래서 ‘장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장이 서는 날을 말하는 건지, 제삿날을 말하는 건지, 장마가 시작되는 날을 말하는 건지, 좋은 날인지 나쁜 날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속담을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에서 장날의 의미
원래 ‘장날’은 장사를 지내는 날을 뜻하는 말로,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장날’은 시장이 서는 날을 말하는 것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그러면서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하필 장날이라 시장에 가고 없더라’라는 부정적인 의미와, ‘우연히 마을에 들렀는데 장날이라 의도치 않게 좋은 물건을 살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모두 갖게 되었다.
사용하는 맥락에 따라 함의는 달라지고, 핵심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예상에 없던 우연을 만났다는 것이다.
단양에 놀러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1일, 6일마다 서는 오일장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시장 바닥을 누비며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엿들었다.
오일장에서 오가는 대화는 주제가 조금 다르다. 당연히 물건의 가격이나 상태를 묻기도 하지만, 거래와 무관한 이야기가 더 빈번하다. 5일마다 보는 얼굴이니 할 이야기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전통 시장과 바흐친의 카니발 이론
대학생 때 문화비평학 수업에서 미하일 바흐친의 카니발 이론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카니발은 고난주일이 끝나면 시작되는 축제였다. 사람들은 가면을 써서 자신들을 숨긴 채 마음껏 취하고 심지어 난교를 즐기기까지 했다. 그러고는 둘러앉아 시원하게 정치와 교회를 풍자하고 비판했다.
기독교의 금욕주의와 정반대되는 생각과 행동을 했던 것이다. 카니발의 핵심은 바로 구조에 대한 전복, 구심력에 대한 원심력, 혹은 이상세계에 대한 동경이었다.
수업을 들으며 나는 조선 시대의 장시가 떠올랐다. 물론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시장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 공간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정치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장시가 바로 조선의 권위주의와 엄숙주의에 저항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던 공간인 것 같았다. 사대부를 희롱하는 탈춤을 보고, 양반들을 흉보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곤, 마치 카니발처럼 다음을 기약하며 사라졌다.
전통 시장의 역사
오늘날의 시장도 다르지 않다. 그곳에선 정치인을 욕하고, 현실에 한탄하는 대화들이 일상적이다.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선 들리지 않는 대화들이다.
5일이라는 주기는 어쩌면 서로 어색하지도, 질리지도 않을 가장 적당한 시간적 거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사적인 이야기를 묻기에 어색하지도, 객쩍은 말을 던지기에 눈치 보이지도 않는 경계라, 가장 다양하고 다채로운 이야기가 꽃피는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마음껏 욕도 하고 흉도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서로의 관계도 딱 그만큼이어서 구태여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인사치레를 하지 않아도 된다. 사적인 관계도, 비즈니스적인 관계도 아닌 중간의 사이다. 이런 자유로운 관계와 대화가 점점 시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최초의 시장은 물물교환을 하는 곳이었다. 시장이 가장 역동적이었던 시대다. 모두가 판매자이면서 동시에 구매자였기 때문에 합의해야 할 것, 확인해야 할 것, 고려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만큼 말과 몸짓의 소통이 무척이나 활발했을 것이다.
화폐가 생기면서 판매자와 구매자의 역할이 구분되었다. 역할과 화폐는 고정되고, 이제 판매/구매하는 물건에 대해서만 협의를 보면 되게 되었으며 그만큼 대화의 폭은 줄어들었다.
그다음은 시장에서 파는 물건들이 대량생산되며 획일화됐다. 물건마다 가격표가 붙어 흥정의 여지가 사라진 만큼 대화의 폭은 또 좁아졌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판매자가 완전히 사라진 시장(e.g. Amazon Go)의 시대까지 왔다. 이제는 단순 문의를 할 상대도 없어서 시장의 대화는 완전히 단절되어 버린 것이다. 요컨대 시장은 발전할수록 대화가 사라져야 한다.
오일장의 특징과 매력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오일장의 또 다른 매력은, 장사를 접으면 싹 사라지고 없어진다는 것이다. 마치 한때의 신기루처럼 축제 같았던 거리는 덩그러니 비어버린다. 왠지 그 휑한 자리에는 장사꾼과 마을 사람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만 제자리에서 쓸쓸히 선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5일이 지나면 다시 그 자리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들어서고, 새로운 이야기가 채워진다. 이렇게 비울 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돌아올 때 다시 가득 채우는 것이 오일장의 매력이다.
비어버린 공간은 다시 찰 때까지 상상을 허락하는 환영의 공간이 된다. 주민들은 빈 거리를 보며 5일 전, 혹은 그보다 더 오래된 추억과 5일 후, 혹은 그보다 더 먼 기대감으로 그 빈 거리를 채운다.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시장은 언제나 설렘이 있는 공간이다.
말하자면 끊임없는 밀당의 공간, 주말부부의 공간과 같은 것이다. 있을 땐 모르다가 꼭 사라지고 나면 일상이 조금 불편해지는 동네의 슈퍼마켓, 편의점과는 다른, 언제나 약간의 긴장감이 있어 좋은 관계가 바로 오일장과 주민의 관계다.
오일장과 같은 장시는 조선 후기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이어져 온 우리의 풍습이다. 장사꾼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이자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 엔터테이너였다. 주민들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민중의 정치인이자 언론인이기도 했다.
장시라는 무대는 가장 반사회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공간이었고, 위로와 희망을 주는 바흐친의 카니발과 같이 이상세계를 동경하는 축제이기도 했다. 이런 독특한 공간이 오늘날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는 것은 정말이지 애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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