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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피카

그래도 어머니의 눈을 가졌기 때문에

by 저피 2020.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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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여행할 때였다. 좁은 골목길에 기타 케이스를 열어 놓고 버스킹을 하는 한 남자를 보았다. 그는 드레드락을 하고 있었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호소력 있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공연을 보다가 유독 한 노래에 마음이 꽂혔다.

 

저스틴 타운스 얼의 Mama's Eyes

 

‘mama’를 부르는 곡이었다. 들리는 가사를 닥치는 대로 핸드폰에 적어 두었다가, 그날 밤 숙소에서 찾아보았다. Justin Townes Earle이라는 가수의 ‘Mama’s Eyes’라는 노래였다.

 

 

 

저스틴 타운스 얼의 Mama's Eyes

원곡을 듣고 나는 그날의 연주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버스커의 해석도 나쁘지 않았으나, 원곡의 표현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버스커는 이 곡을 레게 스타일로 편곡해, 엇박에 강세를 두고 몸을 흔들흔들거리며 노래를 불렀는데, 이 곡은 Justin Townes Earle이 부른 것처럼 점잖게 불러야 훨씬 맛깔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포크음악은 뭐니 뭐니 해도 가사 전달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정답은 없고,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따라 다르다. 아래에 나름대로 가사를 번역해보았으니, 읽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느낌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상상해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분명 아버지의 아들이 맞습니다.

당최 입을 다물 줄 모르죠.

이제 그 누구도 속일 수 없습니다,

내가 우리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절대 의견을 같이하지 않습니다.

사실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음을 인정하겠습니다.

많이 아픕니다, 언젠가는 정말로 아플거고요.

우리의 마음은 서로 잘 맞지 않습니다.

처음 죄악에서 쾌감을 느꼈을 당시 저는 무척이나 어렸습니다.

그때부터 결국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되었죠.

그땐 지금보다도 어렸으니까요.

지금은 새벽 3시, 마지막 남은 담배를 손에 쥐고 부엌에 서 있습니다.

성냥불을 당기고 나니 복도에 걸린 유리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게 말합니다.

나는 어머니의 눈을 가졌다.

그녀의 가늘고 긴 뼈대와 미소도.

아직까지는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다.

어머니의 눈을 가졌기 때문에.

그래, 난 어머니의 눈을 가졌다.

 

 

Mama’s Eyes는 기승전결이 매우 뚜렷한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음악적으로는 크게 verse와 bridge 단 2개의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가사적인 측면에서는 verse, bridge, 그리고 final verse, 크게 3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앞단의 verse들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신의 단점들을 스스로 인정하는 내용이다. bridge는 자기비하를 극복하고 희망을 되찾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화자가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보게 되는 객관적인 사건을 묘사한다. 이렇듯 bridge에서는 verse와 상반되는 멜로디(코드 진행)와 가사(생각에서 사건으로)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클라이맥스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마지막 verse에 접어들며 화자는 다시 내면으로 돌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장점이 아버지의 단점들을 상쇄한다고 말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본인을 아버지(정)와 동일시하던 화자가 내재된 어머니(반)를 발견하며 새로운, 희망 섞인 결말(합)을 맞이하는, 시작과 끝이 탄탄한 스토리다. 물론 그 이후에 그가 어떻게 변하는지(변하기는 하는지)는 해석하기 나름이다. 어머니의 눈을 가졌다는 마지막 자기 대화가 믿음을 갖기 위한 처절한 자기 최면인지, 혹은 실제로 그러함을 인정하는 최후의 자기 위안인지도 해석하기 나름이다.

 

이야기는 언제나 약간의 여지를 남겨 두어야 더 재밌지 않은가.

컨츄리 포크는 다른 장르에 비해 공간성이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외향의 곡들은 대개 ‘노동’, ‘자연’, ‘축제’, ‘사람’에 관하고 내향의 곡들은 ‘기억’, ‘나’, ‘반성’, ‘가족’등의 테마를 갖는다. 외향의 음악은 조금 더 사운드가 풍성하고, 내향의 곡들은 덜 꾸민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내 자의적인 기준에 따르면 Mama’s Eyes는 내향적인 컨츄리 포크 음악인데, 노래가 끝나고 나면 그다음 곡으로는 반드시 외향의 음악을 들어야만 할 것 같다. 그만큼 내게는 완결성이 강하다는 뜻이고, 그래서 더 여운을 남기는 것 같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조금 멀리 간 듯하다. 사실 이 음악을 들을 때 오는 울림은 결국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부모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화자를 보면서 나도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화자와는 다르게 아버지도 무척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부모님이 보고 싶은 날 이 음악을 듣기 바란다. 잠이 오지 않는 늦은 밤 또는 새벽에 어두운 조명을 하나 밝힌 자취방에서 부모님을 떠올리며 들어보면 좋겠고,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울 속 자기 모습에서 그들을 찾아보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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