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다’는 확신을 갖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완전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종종 있다. 한 끼의 식사를 예로 들자면 갓 지은 밥과 아삭한 겉절이 김치, 그리고 시원한 콩나물국과 달짝지근한 갈비찜이 놓인 저녁상은 내게 ‘완전하다.’ 하지만 어느 저녁에는 짭조름한 알리오올리오 파스타가 먹고 싶을 수 있으니 ‘완벽하다’고 말하기엔 부담이 되는 것이다.
음악을 듣고 완전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을 때’다. 물론 그 노래가 언제는 내게 빛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감히 완벽이라는 딱지를 붙이기엔 조금 망설여진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 노래는 누구도 리메이크하지 않았으면 한다. 더 솔직히 말해 누군가가 그 노래를 편곡한다면 그 아티스트의 음악적 센스 자체를 부정하게 될 것만 같다. 좋고 나쁨의 평가는 온전히 취향의 문제이며, 분명히 손댈 곳은 없다고 느낄 때 내게 그 노래는 완전하다. 검정치마의 <Everything>이 그렇다.
검정치마를 좋아하는 이유
처음부터 검정치마가 좋았다. 신보가 나올 때마다 음악의 장르나 분위기는 적잖게 달라지지만, 가식적이지 않아 변함없이 좋다. 조휴일(검정치마)은 내게 1집에선 새콤한 신스팝을, 2집에선 달콤한 어쿠스틱 팝을 들려주었다. 3집에 추가된 건 쌉싸름한 모던락이었다.
1집은 톡톡 튀고 싶은 열정 충만한 소년을, 2집은 사랑과 낭만을 마음껏 향유하고 싶은 청년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3집은 복잡했던 감정들을 다듬고 정리하며 중심을 잡아가고 싶은 장년의 음악 같다. 이렇듯 1집은 미래를, 2집은 현재를, 3집은 과거를 향하며 그의 음악은 탄탄하게 영글어가고 있다.
어쩌면 내가 검정치마를 이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음악과 함께 늙어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집은 무조건 남들과 다르고 싶었던 스무 살의 나를, 2집은 청춘은 한 번뿐이라는 조바심에 낭만을 갈망하던 20대 중반의 나를, 3집은 이제는 정말로 나를 알고 싶은 20대 후반의 나를 위한 노래 같아서 듣고 또 들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나도 그의 음악처럼 제대로 영글어가고 있을까.
<Everything>은 2집과 3집 사이의 긴 공백기에 발매되었던 싱글이다. 내게 이 노래는 이런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여태껏 단 한 번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지만, 3집은 조금 더 깊어질 거야. 기대하고, 준비하고 있어.” 멜로디의 발랄함이나 가사의 위트가 매력이었던 검정치마였지만, 3집에선 오로지 그가 하는 말과 전하는 감정에, 그러니까 노래보다는 조휴일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Everything>이었다.
검정치마 Everything
<Everything>은 정직하고 단순하다. 제목에서부터 그렇지 않은가. 노래는 정박에만 딱딱하게 들어가는 반복적인 드럼이 뼈대를 이룬다. 리드기타 멜로디에 벤딩이나 슬라이드의 변칙이 없지 않지만, 전체적인 안정감을 흔들 정도는 아니다. 다만 지루하지 않을 만큼만, 딱 그 정도로만 아름다운 멜로디를 더해준다.
코러스는 “You’re my everything”이라는 가사로만 채워져 있고, 아웃트로에서도 “You’re my everything”과 같은 의미인 “넌 내 모든 거야”를 반복한다. 하지만 한 번 정도는 빼고 다른 가사를 넣어보고 싶은 욕구가 전혀 들지 않는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전한 노래다.
조휴일은 코러스의 처음부터 끝까지 “You’re my everything”을 매우 차분하고도 편안하게 읊조린다. 그러니까 이 노래는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를 외치는 애절함의 노래가 아니다. 나의 마음을 받아주길 원하는 처절한 고백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자기 고백이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스스로 인지하는 것이다(‘사랑하는구나. 사랑하고 있구나. 사랑이구나…’). 취하지 않고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상태에서 그는 ‘너는 내게 단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 어떤 부담감이나 망설임 없이. 넌 ‘지금의 나’가 아니라 ‘내 모든 것’이니까.
가식으로 느껴진다면 검정치마 1집부터 차분히 들어보길 바란다. 그래야 검정치마를 제대로 알고, 조휴일에 집중하게 될 테니까. 그럴 여유가 없다면 이런 날에 듣길 바란다. 상대의 말과 마음이 어떠한 매개도, 변화도 없이 그대로 전이될 수 있을 만큼 포용적인 날에. 혹은 어떠한 매개도, 변화도 없이 누군가가 나의 모든 것인 사랑을 하는 나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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