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토피카

일상이라는 것, 그 힘

by 저피 2020. 5. 27.
반응형

나 같이 ‘언제나 무엇을 해야 한다,’ ‘늘 안주하지 않고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류의 강박을 가진 사람에게는 일상적인 게 그리 많지 않다. 그 단어가 주는 어감이 부정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상이란 무엇인가

 

내게 일상이란 스스로 강요하는 숙제를 하지 않는, 가장 게으른 상태를 뜻한다. 발전 없이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수준의 행동들, 사회의 일원으로서 하지 않을 수 없는 행동들이 나에게는 ‘일상’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씻고, 회사에 가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거나 영화를 보는 정도... 그 정도가 나에게는 ‘일상적’인 것들이다. 조금이라도 내가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일상적’이지 않다고 느낀다.      

 

 

 

일상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다

말하자면 결국 '일상'의 범위 내지는 무게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일상'이란 너무 제한적이다. 일상의 범위 안에 들어가야 그것이 몸에 배는 것인데, 그게 무척이나 어렵다. 그래서 억지로 매일 반복해도 내 것 같지 않다.

 

결국 일상이라는 개념의 무게를 줄여, 더 편해져야 한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상투적인 표현과도 일맥상통한다. 즉 무념무상으로 반복하며 '이것이 내 일상이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수련을 하듯이, 그 어떤 감정도 동요하지 않을 때까지.  

   

목표나 결과에 초점을 맞추면 일상이 되기 어렵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실 때 '반드시 이 잔을 다 마시겠다'거나, TV를 볼 때 '눈이 아프더라도 무조건 1시간은 보겠다'고 다짐하는 일은 없지 않은가. 그냥 너무나도 당연하게 밥을 먹고, 생각 없이 책을 읽고, 예정 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언가를 '일상처럼'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정말로 '밥 먹듯' 무언가를 편하게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을 바꾼 사람들

최근 고등학교 때 알던 친구를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내가 기억하던 친구의 모습은 운동하고는 거리가 멀고, 식습관 또한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널브러져 있기를 좋아했고, 집에서 혼자 TV를 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친구는 어렸을 때 심한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시각손상을 입었다. 한쪽이 잘 보이지 않아 체육 시간에도 자주 열외되었다. 하지만 10년 만에 본 그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몸에 군살 하나 없었고, 두 눈을 가리던 긴 머리는 스포츠 컷으로 짧게 잘려져 있었다.      

 

그는 매일 10km 이상을 달리고, 일 년에 1~2번은 마라톤 대회를 나간다고 했다. 심지어 이제는 TV도, 영화도 잘 보지 않는다고... 다음번에 다시 만나면 같이 등산이랑 캠핑을 하자던 친구의 모습에 끝까지 적응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어떻게 하면 운동이랑 담을 쌓던 애가 그렇게 바뀔 수 있었는지 물어보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하루에 1시간이 어려우면 10분만 해라. 운동은 분명히 자신과의 싸움이고 그게 재미지만, 헬스장에 가기 싫어서 운동을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게 싸움의 시작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싸움은 실제로 운동을 하는 동안에만 이뤄져야 한다. 그러니 하고 싶은 운동을, 하고 싶은 만큼만 하면서 일단 습관을 들여라. 하체 운동이 싫으면 가서 상체 운동만 해라. 그냥 하기만 해라.”     

 

또 다른 친구의 이야기. 그의 직업은 개발자다. 내 친구 중에 비교도 안 되게 돈을 제일 많이 번다. 내 연봉 끝에 0을 하나 더 붙여도 턱없이 모자랄 정도. 나는 그가 개발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과보다는 문과 체질이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상경계열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분명 컴퓨터나 기타 전자기기에 관심이 있지도, 밝은 편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퇴근하면 밤마다 개발 공부를 한다. 왜 하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뭐... 그냥 하는 거지. 할 줄 아는 게 그거니까. 그냥 퇴근하고 하는 거야."

그냥 하다 보니 잘하게 됐다는 얘기. 그 말이 전혀 재수 없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경쟁자나 평가자가 아닌, 친구이기 때문에 알려줄 수 있는 비법 같았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내 생각을 시험한 두 친구로부터 배운 건 '일단 시작하고, 그냥 하라'다. 하다 보면 하게 된다는 것. 거창하지 않아야 일상이 되고, 일상이 되어야 내가 바뀐다. 


※ 함께 읽으면 좋을 포스팅 ※

 

신호등을 건너며

파란불이 켜지기만을 멍하니 기다리고 있다. 어렸을 적엔 신호등이 모두 전구식이었는데 지금은 LED식으로 바뀌었다. 차량 신호등보다도 보행자 신호등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전구일 때는 보행

averagejoe.tistory.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