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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피카

포르투갈 로까곶에서 배우는 마음에 담는 기술

by 저피 2020.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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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최서단. 포르투갈 로까곶에 서 있었다.

 

이베리아 반도는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그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소 추상적이지만 가장 친절하게 설명해보자면 ‘흙’적인 느낌 때문이다. 이베리아 반도에는 특유의 ‘흙’적인 느낌이 있다. 시각, 촉각, 후각 모두 내게 굉장히 친숙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내가 태어난 고향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유럽의 최서단, 포르투갈 로까곶

원래 계획은 리스본과 신트라성을 구경하고 곧바로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 자정이 넘은 시각에 나는 숙소로부터 자동차로 2시간이 넘게 걸리는 로까곶에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친한 누나와의 연락이었다.     

리스본을 구경하며 스페인에서 1년 정도 살았던 친한 누나가 떠올랐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와이파이가 잡혀 누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리스본을 여행하다 누나가 떠올랐다. 누나가 입에 닳도록 이야기하던 대로더라. 참으로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다.’      

 

“로까 곶. 로까 곶 무조건 가야돼! 내 평생 가본 곳 중에 최고야. 너도 분명히 좋아할거야. 꼭 가!”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잡아야 되는 일종의 강박장애를 앓고 있는 나에게 누나가 주문을 걸어버린 것이다. 리스본과 신트라 성을 구경하고 나니 이미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나는 로까 곶에 가야만 했다.

 

렌터카 GPS에 로까 곶을 입력하고, 빔라이트를 켜가며 조심스레 악셀을 밟았다. 너무 늦게 출발한터라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놈의 강박증만 아니었으면’하고 투덜거리며 로까 곶에 도착했다.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거짓말 안하고 수백 개의 별들이 내 눈앞에 떠 있었다. 보통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바라봐야 보이는 별들이 내 눈높이에, 내 바로 앞에 저만치 떠 있었던 것이다.      

 

오 마이 갓.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포르투갈 호카곶의 별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성능 카메라에 담기에는 빛이 부족했다. 찍어도 찍어도 사진은 검게 나올 뿐이었다. 다시는 못 볼지 모를 광경을 기록할 수 없는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치 사진으로 남기지 못하면 별들이 휘발되어 버릴 것 같은 불안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사진기술에 익숙해질수록 마음에 담는 기술을 조금씩 잃어가는 법이다. 그러나 그때 내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수 십장의 사진을 헛되이 찍어댄 후에야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포기하고 별들을 향해 섰다. 마음껏 느꼈다. 렌즈에 담을 수 없으니 마음에 담을 수밖에. 한 시간 쯤 마냥 바라보고 느끼다 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새벽 3시가 훌쩍 넘은 시각에 녹초가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 꿈에서도 별이 보였다. 검기만 한 사진을 보는 지금도 어렴풋이 별이 보인다.


인생은 저녁식사초대와 비슷할지 모른다. 저녁식사에 초대받으면 어떻게 하나? 왜 나를 초대했냐고 캐 묻나? 아니면 도대체 내가 뭘 해야 되는 건지 정신없이 찾아 헤매나? 그렇지 않다.

 

그저 겸손한 자세로, 감사한 마음으로, 미소 지으며 준비된 저녁을 맛있게 먹는다. 음식을 하나하나 음미해가며 먹을수록 좋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 중에 0.0001%도 경험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냥 내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것들에 감사하고, 마음껏 누리고 느끼다 가는 것이 인생이어야 하지 않을까? 

 

유럽의 최서단이라고 하는 포르투갈의 호카곶에서 찍히지 않는 별들을 바라보며 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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