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데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상처 줄 수 있는 모서리를 하나쯤은 안고 산다. 그 모서리에 면역이 된 홈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일생은 자신의 모서리를 뭉툭하게 깎기는커녕, 그로 인해 상처받지 않을 홈을 가진 상대를 찾기에도 벅찰 만큼 짧은 시간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연인과 헤어졌을 때도,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도 자책부터 했다. 고장 나지 않은 나를 고치려했다. 갈고, 맞추고, 떼고, 붙이고. 열심히도 재단해왔다. 나는 나를 사랑할 줄 몰랐고, 무던히도 내 입을 막아대며 조각칼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모서리를 다듬다보면, 설령 그것에 성공한다 해도, 결국엔 한 없이 굴러가는 ‘누구나’가 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건 최근의 일이다. 조금만 늦었으면 나를 영영 잃어버렸을 것 같은 간담 서늘한 생각마저 들었다. 남을 생각하는 것의 반만큼이라도 나를 생각하지.
또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며칠 전, 버스 안에서 친한 동생과 통화를 했다. 나는 만취한 상태였다. 동생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나 자신을 조금 더 아끼라고 말했다. 남을 대하듯 스스로도 위로하고 응원하라고.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면 뭐가 달라져?"
“자책하면 뭐가 나아지는데?”
순간 마신 술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것 같았다. “기사 아저씨, 차 좀 세워주세요.” 버스는 정차할 수밖에 없었다. 헛구역질 몇 번 하고 집까지 남은 길을 걸어갔다. 내릴 수 없는 지하철을 탔어야 했다. 자책하면 뭐가 나아지는데. 그래, 네 말이 맞다.
요즘 나는 나에게 꼭 맞는 것을 찾는다. 모난 나에게. 최근에는 펜을 찾고 있었다.
나는 첫 획은 어김없이 헛도는 볼펜이 싫다. 종이에 갖다 대자마자 다음 장까지 스며드는 잉크를 과하게 내뱉는 펜도 싫다. 세 번째 손가락 첫마디를 아프게 짓누르는 둥그런 펜이 싫고, 아프지 말라고 펜 중간에 끼워 넣은 고무 보호대에 먼지가 달라붙는 건 더 싫다. 브랜드 로고가 벗겨지는 펜이 싫고, 펜대가 너무 길어서 이따금씩 옷소매를 건드리는 것도 싫다.
나에게 꼭 맞는 펜을 찾는다. 나를 알아간다. 모난 나를.
어렸을 적 나는 내게 꼭 맞는 게 무엇인지 알았다. 어쩌다 접힌 완벽한 딱지. 가로와 세로의 길이, 그리고 두께까지 완벽한. 공수(攻守)에 두루 능한 안정적이면서 공격적이었던 딱지. 그 딱지는 내 방을 나가는 경우가 없었다. “이건 절대로 안 돼!” 그때는 알았다. 내 손에 꼭 맞는 것을. 그것이 친구에겐 보잘 것 없어보였어도 내겐 확신이 있었다. 내 손, 내 취향, 나, 그리고 딱지. 모든 것이 온전히 내 것이었다.
어쩌면 그 또한 동심(童心)이리라. 약간의 고집과 집착.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자신을 알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었던 순수함. 나는 다시금 나를 탐험하고 있다. 누군가, 무언가에 맞춰 재단하기 전 나의 본모습을.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진부하기만 했던 말이 내 옆구리를 조금씩 찔러대는 요즘, 나는 아주 작은 곳에서부터 실천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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