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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슈탈트 붕괴현상 - 무엇이 무엇인 줄 모를 때

by 저피 2020.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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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떤 개념이 떠오르지 않았다. 갑자기 머릿속이 멍해지는, 알 듯하면서도 기억이 나지 않는, 어떤 불확실한 미시감의 현상을 일컫는 개념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그 체험을 설명하는 개념이 있는지, 내가 그 개념을 일컫는 단어를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그런 단어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급한 마음에 얼마 전 그 단어를 썼던 것 같은 여자친구한테 물었다. ‘게슈탈트 붕괴현상’이었다. 게슈탈트 붕괴에 관한 일종의 게슈탈트 붕괴를 체험했던 것이다.

 

게슈탈트 붕괴현상

 

게슈탈트 붕괴현상이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게슈탈트 붕괴는 학술용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유래한 인터넷 용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에서 종종 접하게 되는 용어인데다 왠지 그럴싸한 어감 때문에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 언급한다. 그리고 나도 학술용어인 줄 알았음을 밝힌다.

학술용어가 아니면 어떠한가. 어쨌든 학술적인 개념에 근거한 것은 사실이며, 또 어법이나 개념을 파괴하는 류의 은어도 아니니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는 알아 두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우선 게슈탈트(Gestalt)는 양식이나 구성을 뜻하는 독일어다.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무언가를 지각하는 방식이 개별적인 요소들을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패턴을 인식하는 것이라 말한다.

즉, 게슈탈트가 붕괴했다는 것은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틀이 무너졌음을 뜻한다. 그러니까 ‘저 배우의 이름이 뭐였더라,’ ‘어제 저녁에 무얼 먹었더라’하는 것은 게슈탈트 붕괴가 아니다.

 

 

언제 게슈탈트 붕괴현상이라고 하나?

게슈탈트 붕괴현상

흔히 게슈탈트는 일상적이었던 것이 매우 낯설어지는 현상을 말할 때 쓰인다. 패턴이 붕괴되니 개별적인 요소들만 인식하는 수준이 되고, 이는 지각에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뭔가 어설프고 어색해지는 것이다. 예컨대, ‘궤도’라는 단어가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해 보일 때가 있다. 수천 번은 써봤을 저 단어가 맞춤법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생긴 것도 어설픈 것 같아 종이에 직접 써보기도 한다. 이런 경우 게슈탈트가 붕괴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경우로는 무언가에 심하게 몰입할 경우, 순간적으로 몰입한 대상의 정의나 개념을 잊어버릴 때 ‘게슈탈트 붕괴’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 소위 말하는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건 뭐’ 상황이다. 순간 단기 기억상실증이나 치매처럼 상황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어찌 됐든 게슈탈트 붕괴 현상은 상황이나 생각의 맥락 또는 틀이 사라져 개연성이나 구조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학술적 용어가 아닌, 인터넷 은어라고 치부하고 무시하기엔 유사한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실제로 일상적인 단어도 여러 번 되뇌다 보면 게슈탈트 붕괴 현상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연필, 연필, 연필, 연필, 연필, … 여러 번 입밖으로 소리 내어 보고 글씨도 적어보다 보면 어딘가 모르게 기이하다. 너무나 일상적인 것도 한 순간에 낯설어질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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