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색약과 색맹의 차이를 알고 있으나, 포스팅을 시작하는 취지에서 간략히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다.
색맹(color blindness) - 색을 아예 인지하지 못함
색약(color amblyopia) - 유사한 색을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짐
색맹은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장애인 반면 색약은 주위에서 적지 않게 발견된다. 색맹과 달리 색약은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밝히지 않는 이상 알아보기도 어렵다. 색맹과 색약은 대부분 유전적인 요소로 인해 생기며, 현재 이를 직접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은 없다고 한다.
이시하라 색약 테스트
본인이 색약이 의심되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테스트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건 바로 이시하라 테스트(Ishihara Test)다.
이시하라 테스트는 일본 교수인 이시하라 시노부가 만든 검사표로 1917년에 제작되었다고 한다.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시하라 테스트는 책자 형식으로, 각 페이지 당 한 개씩의 테스트 판이 들어가 있다. 총 38개(장)로 구성되어 있는데, 24개, 또는 14개의 요약본으로 판매되기도 한다.
나는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이 테스트를 받았었는데, 요즘도 하지 않을까 싶다. 학교에서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사람들은 살면서 한 번쯤은 이시하라 테스트를 봤을 것이다.
※아래의 테스트는 재미로만 보자!※
디스플레이의 퀄리티나 이미지의 픽셀 및 크기 등의 환경적인 요인에 따라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볍게 자가진단을 해보는 용도로만 보고, 의심이 가는데 확실히 알고 싶으면 무조건 안과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판스워스-먼셀 색약 테스트
또다른 색약 테스트로는 판스워스-먼셀 테스트(Farnsworth-Munsell 100 Hue Test)가 있다. 이 테스트는 생소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판스워스-먼셀 테스트는 아래의 사진과 같이 4개의 줄로 구성 된 트레이에 색깔이 표시된 디스크 조각들을 순서대로 끼워 맞추는 검사다. 양극단에는 이미 두 개의 디스크들이 맞추어져 있고, 검사를 받는 대상자는 그 가운데에 색조가 변화하는 단계를 디스크 조각들로 표현해야 한다. 판스워스-먼셀 테스트는 나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받아보고 싶다. 자신은 없지만.
“이게 왜 17이야, 15지. 15 안 보여? 여기, 이렇게 5자로 꺾이는 게 안 보여? 미쳐버리겠네 진짜!”
어머니는 나의 팔목을 붙잡고, 내게는 보이지 않는 굴곡을 애타는 마음으로 그리셨다. 의사 선생님은 장애가 아닐뿐더러 정도가 약한 편이라고 어머니를 달래보았으나, 제 자식이 치료할 수 없는 질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 어떤 위로도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시다가, 애꿎은 초등학생 자식을 꾸짖으시다가, 다시 입을 다무셨다.
그때 내가 적록색약이라는 사실은 큰 의미가 없었다. 당시에 난 너무 어렸고, 실생활에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불과 몇 년 후 ‘장래희망’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 즈음 그 실체를 느끼기 시작했다. 색깔을 분별하는 능력이 조금 떨어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조종사가 될 수도, 외과 의사가 될 수도, 경찰이 될 수도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영화 <리틀 미스 선샤인>에서 드웨인 역을 맡은 폴 다노는, 평생 조종사가 되기 위한 삶을 살다가 영화 후반부에 본인이 색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 내내 묵언 수행을 하던 드웨인이, 본인이 조종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내뱉는 첫 대사는 “FUCK!!!”.
최근에 친한 동생이 드웨인과 유사한 일을 겪었다. 화공과를 전공해 화학 엔지니어 직무로 두 회사에 최종합격을 한 동생은 신체검사에서 색약이라는 이유로 두 군데 모두 탈락을 하게 되었다. 화학 엔지니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최대한 묵묵하게 받아들인 그는 내게 공무원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감정을 어설피 꾹꾹 눌러 담은 느낌이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동생은 몇 주간 해외여행을 떠났다. 다녀온 뒤 연락이 닿았을 때 그는, 또 한 화학회사에 최종합격을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공무원이 되겠다던 그의 목소리에서 왠지 이번엔 자신감이 느껴졌다. 합격통지를 받은 그는 바로 안과로 갔다.
동생은 색약렌즈를 샀다. 렌즈를 끼면, 색약 테스트에서 보이지 않았던 숫자들이 뚜렷하게 보인다고 했다. 서류시험, 필기시험, 1차, 2차 면접보다 “최종합격” 이후의 신체검사가 더 떨리는 그의 심정을 헤아리기란 어려웠다. 게다가 오리엔테이션 일정까지 안내받고, 입사 동기들끼리 인사까지 나누고도 탈락했던 두 회사의 신체검사 때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라는 얘기를 너무 쉽게 했던 터라, 이번엔 그 어떤 말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심 그가 완벽히 속이기를 응원했고, 그 바람은 이루어졌다. 내가 다 통쾌했다.
나의 외할아버지도 색약이시다. 외할아버지는 집안이 가난해 원래 중학교에 다닐 형편이 되지 못했지만, 국민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덕에 교장의 추천을 받아 학비가 전액 지원되는, 일본인이 재학하는 중학교의 입학시험을 보게 되셨다. 시험은 수차례에 걸쳐 몇 주간 진행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라 비중이 컸던 체력시험과 원래 자신 있으셨던 필기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 국민학교 교장 선생님은 외할아버지를 따로 불러 “중학교에 갈 수 있겠다”며 미리 축하까지 해주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도 결국 신체검사에서 색약이라는 이유로 탈락했고, 평생 국민학교 이후의 교육을 받지 못하셨다.
나나 친한 동생과 달리 외할아버지는 색약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당하셨다. 그 전까지 색약 테스트를 받아본 적도,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셨다. 단지 숫자가 보이지 않아, 안 보인다고 했다는 이유 하나. 그것으로 그 자리에서 입학 취소 선고를 받은 외할아버지는 차마 교장 선생님을 볼 면목이 없어 발을 구르셨다고 한다.
색약이 그렇게 큰 하자인가.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 때 맛도 잘 분별하지 못했다. 짠맛을 단맛이랑 헷갈리고, 쓴맛을 신맛이랑 헷갈렸다. 주의도 산만했다.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새로운 자극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내가 무엇이 될 수 없는지를 결정하는 건 색약뿐이었다.
변별력이 떨어지는 채용 과정에서, 특히 요즘같이 뛰어나고 준비된 인재가 많을 때 색약은 분명 고용주가 쉽게 거르는 리스크일 것이다. 하지만 보조기기가 그렇게 잘 나오는 요즘 같은 때에도 꿈조차 못 꾸게 눌러버리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내 눈에 세상이 조금 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색약 때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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