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보 마당

현실 속 비질랜티(Vigilante) - 굴라비 갱, 가디언 엔젤스, 로스 페페스 등

by 저피 2022. 8. 4.
반응형

Vigilante(비질랜티 또는 비질란테)는 보통 한국어로 자경단, 또는 민병대로 번역된다. 비질랜티나 자경단이나 정의를 수호한다는 점에서 하는 역할이 비슷할 수 있으나, 그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방식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실재 자경단 소개

 

 

비질랜티, 자경단이란?

자경단이나 민병대는 기본적으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인다. 국가가 정한 법을 집행하는 검경찰 또는 군대의 인력이 부족할 때, 자원해서 그들을 보조하는 것이 자경단과 민병대다. 즉, 공식적인 집행부의 지시에 따라 제한적인 역할만 수행하는 것이다. 반면 비질란테는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의 일을 모두 자처한다.

스스로 정의의 기준을 세우고, 그렇지 못한 사건을 수사하며, 용의자를 구속하여 나름의 방식으로 처벌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인 시각에서 비질란테는 다분히 부정적인 함의를 내포한다.

 

영화 <배트맨>에서 등장하는 경찰 대부분이 비질랜티인 배트맨과 협업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비질란테는 공권력이 확립을 지나 안정화되었다고 여겨지는 현대에서도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이번 포스팅에서는 현대사회에서 어떠한 비질란테 활동들이 있었는지, 몇 개의 단체들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라벤더 팬더스(Lavender Panthers)

실제 자경단 라벤더 팬더스의 모습

라벤더 표범은 성소수자인 LGBTQ+의 인권 보호를 위해 197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화된 비질랜티 단체다.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1960년 대에 흑인차별 금지와 평등한 인권 수호를 위해 무장활동까지 감행하였던 흑표당(Black Panther Party)의 영향을 받았다. 라벤더 표범은 동성애자 목사인 레이몬드 브로쉐어스(Raymond Broshears)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동성애 혐오자의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를 찾아가 물리적으로 보복하는 활동이 주를 이루었다.

 

1년 정도 활동을 이어 갔을 당시, 라벤더 표범이 동성애자를 구타한 십 대들을 상대로 보복 폭행을 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가해자인 십 대들의 부모가 라벤더 표범을 경찰에 신고하였고, 집단 구속을 막기 위해 레이몬드 목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라벤더 표범의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굴라비 갱(Gulabi Gang)

현실 속 비질랜티 굴라비 갱

2006년 인도에서 설립된 굴라비 갱은 인도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굴라비(Gulabi)는 핑크색을 뜻하는 힌디어로, 굴라비 갱은 그들의 단체복 색깔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들은 여성의 인권 유린 범죄가 발생했을 때, 다같이 분홍색 사리를 입고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찾아가, 가해자를 막대기로 때리는 처벌방식으로 유명하다.

 

극심한 가부장제와 카스트 제도 속에서 인도 여성들은 아직도 끊임없이 가정폭력과 성폭행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에 반해 사회의 제대로 된 보호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곳으로는 바로 비질랜티 단체인 굴라비 갱만 남게 된 것이다. 2006년에 조직된 굴라비 갱은 아직까지 후원을 통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회원 수를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2014년 알자지라에서 기사화한 굴라비 갱의 회원 수는 40만 명이었다.

 

 

솜브라 네그라(Sombra Negra) / 로스 페페스(Los Pepes)

실존 자경단 로스 페페스와 파블로 에스코바

스페인어로 검은 그림자라는 뜻을 지닌 ‘솜브라 네그라’ 는 1989년에 처음 공개된 엘 살바도르의 비질란테 단체였다. 1989년부터 1995년까지 이들은 엘 살바도르에서 활동했던 범죄조직을 직접 잡아 처형했다. 엘 살바도르 정부에 대한 믿음이 바닥이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범죄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결집한 것이었다.

 

그들은 범죄자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처형한 뒤에 심지어는 사체에 메시지까지 새겨 다른 범죄조직들을 경고했다. 그들은 파블로 에스코바와 메데인 카르텔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던 콜롬비아의 비질랜티 단체 로스 페페스(Los Pepes)와 배경이나 활동 양상이 유사하다. 로스 페페스나 솜브라 네그라에는 윤리의식이 투철하고 부패되지 않은 경찰이나 군인들도 다수 소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레인 시티 슈퍼히어로 무브먼트(Rain City Superhero Movement)

실존 슈퍼히어로 자경단 RCSM

앞서 언급한 베트맨처럼, 사실 우리가 아는 슈퍼히어로는 대부분 비질랜티다. 그렇기 때문에 재밌는 픽션이 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역할이 행정부의 지시에 따라 단순히 지정된 범죄자를 검거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렇게까지 슈퍼히어로물이 성행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슈퍼히어로들이 현실에서도 나타난 적이 있었는데, 바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시애틀에서 활동했던 레인 시티 슈퍼히어로 무브먼트(Rain City Superhero Movement)다. 이 단체는 No Name(무명), Thorn(가시), Catastrophe(재앙) 등의 이름을 가진 10여 명의 “슈퍼히어로”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규정한 각자의 정체성에 맞는 코스튬을 입고 활동했으며, 그들의 리더는 “피닉스 존스(Phoenix Jones)”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벤자민 포도(Benjamin Fodor)라는 20대 남성이었다.

 

Rain City Superhero Movement는 시애틀 도시를 함께 돌아다니면서 음주 운전이나 마약 거래를 막는다거나, 늦은 밤 혼자 걸어 다니는 행인을 집까지 동행해준다거나, 술집을 돌아다니며 발생하는 폭력 사건들을 제지하는 등, 눈에 보이는 범죄나 위험이 있으면 즉각적으로 개입했다. 하지만 공권력을 지닌 단체가 아닌 비질란테였기 때문에, 그들의 처벌을 받은 가해자의 각종 소송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결국엔 2014년도에 피닉스 존스의 선언에 따라 해체되었다.

 

 

 

가디언 엔젤스(Guardian Angels)

뉴욕의 자경단체 가디언 엔젤스

가디언 엔젤스는 1979년 커티스 슬리와(Curtis Sliwa)에 의해 조직화되었다. 그들은 뉴욕시 지하철에서 자주 발생하던 범죄를 막겠다는 굉장히 구체적인 목표에서 출발하였다.

 

무엇보다 비무장 상태로써 상징적인 빨간색 베레모와 재킷의 단체복을 입은 채, ‘순찰’의 기능에 초점을 두었던 점이 앞서 살펴보았던 다른 비질랜티 단체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물론 선한 의도와 무관하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비질란테였으며, 지향했던 바와는 다르게 가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일도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각종 비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점차 역내 순찰뿐만 아니라 빈곤층을 위한 교육활동이나 자연재해 복구활동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비영리 봉사단체로 이미지가 부상되었고, 결국엔 뉴욕 시장까지 그들을 옹호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들은 현재 뉴욕시뿐만 아니라 13개국, 130여 개의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국가의 법 제도는 완벽하지 않다. 모든 요소가 빠짐없이 일관적이거나 논리적일 수 없을뿐더러, 결국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평가되고 운영되기 때문에 인간요소(human factor)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제도의 허점을 드러내고, 제도를 운영하는 정부의 기능을 견제하여 정의를 수호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이 비질란테다.

 

물론 법과 규율을 무시하고 초월적인 행동을 하는 비질란테를 무조건 옹호할 수는 없으나, 비민주주의적인 국가와 사회의 억압 속이라면 약자를 지키기 위해 정의의 수호자를 자청하는 비질란테를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