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로 신혼여행을 가기로 정한 후부터 쿠바와 관련된 콘텐츠들을 찾아보고 있다. 영화 <치코와 리타>나 JTBC 프로그램 <트래블러>도 그렇게 보게 되었다. 하지만 쿠바를 검색하기 전까지는 몰랐던 두 작품과 달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예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작품이었다.
늘 보고 싶었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음악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이다.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는 내게 음악 다큐멘터리 본다는 것은 마치 시즌 10개짜리 미드를 시작하는 것과 같다. 영화는 1~2시간 안에 끝날지라도, 한 달 동안은 그 음악들만 반복 재생하며 들을 나를 알기에, 설레면서도 첫 발을 떼기 쉽지 않았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줄거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은 독일감독 빔 벤더스가 연출한 1999년(한국에서는 2001년에 개봉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인 라이 쿠더(Ry Cooder)가 전설적인 쿠바 뮤지션들을 불러모아 녹음한 앨범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암스테르담과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올리는 여정을 담고 있다. 빔 벤더스는 이 ‘슈퍼밴드’가 앨범을 녹음하는 장면, 그리고 공연을 올리는 장면을 기록하며 동시에 개개인의 인터뷰를 담았다.
영화는 이렇게 공연 또는 녹음의 연주 장면 중간마다 전설의 뮤지션들이 자신을, 또는 쿠바의 문화나 음악 등을 소개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지루할 틈이 없다. 사이사이에 감미롭고 열정적인 음악을 보고 들을 수 있어서 뮤지션 개개인의 굴곡지고 험난한 삶이나 쿠바 음악의 쇠퇴에 대한 슬픈 인터뷰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영화의 주축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공연과 녹음 장면이라 여기선 내러티브라 할만한 게 없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 들어가는 전설들의 인터뷰에 희로애락과 기승전결이 들어있다. 요컨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단편소설스러운 영화인 것이다. 공연과 녹음 장면은 이 책을 더 매력적이게 만드는 매끄러운 종이 재질과 마음에 쏙 드는 폰트, 그리고 세월을 머금은 책 냄새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설 한 명 한 명이 다 좋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콤파이 세군도와 루벤 곤잘레스다.
콤파이 세군도
콤파이 세군도는 본명이 아닌 애칭인데, ‘동료(compadre)’를 뜻하는 콤파이(Compay)와 서브 보컬을 담당해서 ‘두 번째’를 뜻하는 세군도(Segundo)를 합친 이름이다.
1907년에 태어나, 이 영화를 찍을 당시 아흔 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력적이고 쾌활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단지 고령이어서가 아니라, 실력과 매력으로 그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중심을 잡고 있었다. 그의 기타 연주와 목소리 톤, 표현력은 단순한 노익장이 아니었다. 세월은 그의 캐릭터와 음악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루벤 곤잘레스
루벤 곤잘레스는 인터뷰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연주하는 모습이 강렬했다. 라이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결성할 당시 루벤에 관해 수소문할 때 그는 관절염이 심해져서 더는 연주를 못한다는 루머가 돌았다고 한다.
그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그 별것 아닌 그 루머가 유머가 된다. 다른 전설들 모두가 그렇지만 루벤은 왠지 모르게 더더욱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것 같다. 그의 연주는 단지 천재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무수한 연습을 통해 다져진 모습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결성되며 불려온 전설들은 대부분 70~90대였다. 쿠바 음악의 황금기였던 1930~40년대에 활동했던 음악가들로, 이 프로젝트가 결성될 시기에는 이미 다른 업종에 종사하거나, 은퇴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라이 쿠더가 한 명, 한 명 알음알음으로 수소문을 통해 겨우 불러 모은 사람들이었고, 몇몇 전설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어 초대할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라이 쿠더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부르고 싶은 뮤지션에 관해 물을 때면 그들이 아직 살아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인해 그들은 재기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만큼 전 세계로부터 전례 없는 명예를 얻게 되고, 그들이 평생 연주하던 음악을 재조명시킨다. 음악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업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현상’은 황혼기까지 열정이 식게 내버려두지 않았던 이들에게 내려진 마지막 선물이자, 그들을 지켜본 세상에는 어떤 이유나 환경에서도 꿈을 잃지 말라는 격언이 옳음을 재확인시켜주는 교훈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핵심 멤버 대부분이 몇 년 후 세상을 떠났다는 점은 참 안타깝기만 하다. 한편으로 그래서 더욱 운명적이라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리뷰 > 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넷플릭스 영화 추천 <나는 여기에 없다> (0) | 2023.03.13 |
---|---|
던 월(The Dawn Wall) 리뷰 - 불가능에 도전! (6) | 2020.03.23 |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리뷰 – 성실함의 배신 (21) | 2020.03.18 |
<쏘리 투 보더 유(Sorry to bother you)> 리뷰 - 불편한 진실 마주하기 (0) | 2020.02.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