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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리뷰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리뷰 – 성실함의 배신

by 저피 2020.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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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도 높은 이야기로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을 받은 영화, 매혹적인 미장센으로 디렉터스 컷 시상식 독립영화감독상을 받은 영화, 명연기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2015년에 개봉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봤다. 이 영화는 안국진 감독의 첫 장편이자 저예산 영화이면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 이정현을 재조명한 영화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리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줄거리 (스포주의!)

‘수남’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곧잘 했다. 여공과 엘리트의 삶을 고민하다 엘리트가 되기 위해 상고에 입학한다. 고교시절 손재주가 좋아 주산, 부기, 타자 등 14개의 자격증을 따고 든든한 마음으로 졸업해 사회로 뛰어든다.

 

하지만 컴퓨터의 등장으로 그녀의 자격증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수남은 결국 조그만 공장에 회계원으로 취업한다. 그녀가 살면서 겪는 첫 번째 모순이자 배신이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공장에서 수남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청각장애인 ‘규정’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내 결혼을 하는데, 자식만큼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하겠다는 집념으로 신혼여행도 미루고 집부터 사기로 한다.

하지만 그사이에 규정의 청력은 보청기로 보완되지 않을 수준으로 악화된다. 수남의 집요한 설득 끝에 결국 규정은 2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인공 와우 수술을 받게 된다.

 

공장에서 작업을 하던 어느날 규정의 인공 와우에 문제가 생긴다. 인공 와우가 내는 거슬리는 소리에 방해를 받던 규정은 그만 사고를 내고, 손가락 세 개가 절단된다.

그로 인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폐인이 되어버린 규정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 채 집에서 칩거한다. 이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수남이 마음의 결정을 내린다. 바로 규정의 꿈이었던 집을 선물하겠다는 것이다.

손을 잃은 규정을 위해 수남은 다시 손을 쓴다. 수남은 다시 자신의 손재주를 이용해 신문 배달, 명함 돌리기, 집 청소 등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한다. 하지만 이미 컴퓨터로 대체된 사회에서 손을 쓰는 일은 보상이 턱없이 낮고, 집값은 수남이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빠르게 오른다.

 

결국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하고 규정과 이사를 한다. 규정은 아무 말 없이 부르튼 수남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린다.

 

규정이 우는 모습을 보고 수남은 이제 다 됐다고 생각한다. 규정이 아직 자신을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지쳤던 마음을 달랜다. 하지만 그 눈물은 행복의 눈물이 아닌,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수남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의 눈물이었다.

어느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수남은 그녀 앞으로 편지 한 통을 남기고 목을 매단 규정을 발견하게 된다. 병원으로 호송했지만 규정은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줄거리

 

수남은 규정을 위해 집을 포기하고 인공 와우를 선택했는데 그것이 규정의 사고로 이어지고, 규정을 위해 악착같이 일하며 집을 샀는데 규정은 자살기도를 한다. 또다시 성실하게 살라던 사회와 도덕관념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것이다.

 

주택대출에 이제는 규정의 병원비까지 부담하게 된 상황에서도 수남은 더 성실하게 일한다. 집을 전세 놓고 본인은 고시원에 들어가 산다. 보호자가 병원비를 감당할 수도 없고, 환자에게 더는 가망도 없으니 존엄사를 고려해보라는 의사의 조언에도 귀를 닫고 수남은 규정을 위해 더 열심히 산다. 귀를 얻고 손을 잃은 규정과 달리, 손을 쓰기 위해 귀를 닫는 수남의 모습이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풀리지 않자 수남은 고민 끝에 집을 팔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부동산에서 수남은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바로 그녀의 동네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었다는 것이다. 성실하게 살아온 그녀를 드디어 세상이 알아봐 준 것일까 싶었지만 인근 동네 주민들의 반발로 인해 재개발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와 성실함의 배신

재개발을 둘러싼 이권 다툼 속에서 수남은 드디어 ‘성실함’을 버린다. 그녀는 신문 배달을 관두고 재개발 찬성 서명을 받으러 다닌다. 이후 영화는 수남의 통쾌한 복수극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서명 운동을 방해하는 사람, 반대 시위의 주도자, 심지어는 형사까지 무참히 살해한다. 바로 그녀가 자부하던 ‘손재주’를 써서 신문 던지기, 명함 꽂기 등의 기술로 그녀의 앞을 막는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PTSD를 겪던 규정이 “안 보이게 치워달라”고 울부짖던 칼을 능숙히 다루게 되며 마침내 재개발을 이뤄낸다.

 

수남은 처음으로 지름길을 걸어 얻은 돈으로 규정의 병원비를 완납한다. 병원비를 완납하고 나니 다시 희망을 주려는 의사를 차갑게 밀어내고 그녀는 규정과 함께 미뤄두었던 신혼여행을 떠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리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풍자와 알레고리가 풍부한 작품이다. 현실은 잔혹하다. 변덕스럽고 모순투성이다. 왕도가 없다고 하는데 늘 지름길을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맛있는 복어에는 사람을 죽이는 맹독이 있다. 신경(귀)을 안 쓰면 일(손)하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그것이 삶인가. 그러나 부조리함을 알면 내 일을 하기 어렵다. 자동화된 사회는 더이상 손재주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손재주란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며 목숨을 살리고 끊을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기술이다.

 

수남은 배운 대로 살았고 시키는 대로 했지만 약속받은 대로 받지 못했다. 속은 것이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살인자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재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살인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늘 비관적으로 보고, 남들을 믿지 말라고 하는 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지나친 과대해석이다. 성실함이라는 개념을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 치부해버리거나, 옛말을 모두 부정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다만 비판과 비관은 엄연히 다르다.

 

비관적인 사고는 수남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겠지만, 비판적인 사고는 수남의 비극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성실하면 좋지만 성실함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옛말을 새겨들어 나쁠 것 없지만 신념에 집착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세상은 복잡하고, 삶은 공평하지 않다.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수남의 복수가 통쾌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를 괴롭혔던 모순을 역으로 사용한 복수라 더 짜릿하다. 관객으로서 그 정도는 즐겨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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