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넷플릭스에서 영화 <나는 여기에 없다>를 봤다. 최근에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만난 지 오래되었는데, 그런 영화를 찾은 것이다. 기쁜 마음에 참 오랜만에 영화 리뷰를 남겨 본다. 라틴 문화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선보일 것이고, 성장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응원과 위로를 줄 것이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만족감을 줄 것이라 자신한다.
<나는 여기에 없다> 줄거리
<나는 여기에 없다(I’m No Longer Here)>는 원어로 <Ya no estoy aquí>이다. 정확히 번역하면 “나는 ‘더 이상(또는 이미)’ 여기에 없다”가 맞는데 그 이유는 줄거리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 없다>는 멕시코 영화로, 멕시코의 동북부에 위치한 도시 몬테레이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멕시코 몬테레이 슬럼가의 갱단 로스 테르코스(Los Terkos)의 리더인 17살 율리시스다. 참고로 테르코스(Terkos)는 ‘완고한, 고집이 센’이라는 뜻이다. 로스 테르코스의 소속원들은 하나같이 통이 넓은 바지와 옷을 입고, 매우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며, 무엇보다 ‘쿰비아(Cumbia)’라는 음악에 심취해 춤과 유흥을 즐기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쿰비아에 대해서는 하기에 별도로 다루었다)
인기 많고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로서 갱단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율리시스는 라이벌 갱단의 오해를 산 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피신을 하게 되는데, 영화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율리시스는 혈혈단신으로 피신을 온 뉴욕 퀸즈에서 고군분투한다. 한동안은 일용직 노동자들과 같이 일하며 합숙 생활도 하였으나 영어도 못하고, 일머리도 부족한 데다가, 심지어 그들의 눈에는 해괴망측한 스타일과 취향을 가진 터라 율리시스는 결국 어울리지 못하고 그들과 크게 다툰 뒤 헤어지게 된다.
다시 혼자가 된 율리시스는 중국인 주인이 운영하는 가게의 옥상을 청소해 주고 일당을 챙긴 뒤, 주인 몰래 옥상에 다시 무단으로 침입하여 노숙을 하기 시작한다. 이를 알게 된 가게 주인의 조카 린은 율리시스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성심성의껏 그를 도와주며 둘 사이에 우정을 쌓아간다.
린의 도움으로 율리시스는 다시 유대감을 느끼고 행복을 되찾는 듯했으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고 린이 초대한 파티에서 향수병을 심하게 느끼며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그가 돌아갈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어머니는 라이벌 갱단이 그를 보면 바로 죽일 것이라며 돌아오지 말라 하고, 잠시 사귀었던 여성을 찾아가 보았지만 그녀도 그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 한다. 율리시스는 거리를 배회하다 페인트 시너 한 병을 사서 흡입하며 취한 상태로 상징적인 그의 머리를 싹둑 잘라버린다.
길거리에서 취해 잠든 율리시스는 경찰에게 발각되고, 몇 달 간 감옥에 갇혔다가 다시 멕시코로 추방을 당한다. 하릴없이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자신이 없는 사이에 라이벌 갱단이 이미 마을을 장악했고, 그가 이끌던 로스 테르코스 대부분이 그 조직에 합류한 사실을 알게 된다.
기독교로 개종해 설교 활동을 하게 된 오랜 친구 한 명이 율리시스에게 갱단을 피해 자신과 함께 지낼 것을 제안하지만 율리시스는 거절한다. 그리고는 거리에 나와 홀로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쿰비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
1. <나는 여기에 없다> 주요 테마
요컨대 율리시스가 뉴욕으로 도망을 간 것은 생존의 과정이 아닌 성장의 과정이었다. 언어로써 소통이 불가한 새로운 환경에서 객관화를 통해 율리시스는 점차 본인이 자라 온 억압된 체계 속의 한 객체에서 주체로 거듭난다.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하고, 욕구와 억압의 창구가 되기도 하면서, 꿈과 이상을 가꾸기도 하는 음악과 문화의 무한한 가능성, 말이 통하지 않아도, 전혀 다른 세계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 가족처럼 지내며 위로받을 수 있는 유대감과 소속감의 힘, 그리고 올곧고 강인한 내면을 쌓아가는 동안 한 편으로는 애석하게도 순박함을 잃고 현실과 타협해 나가야 하는 과정인 성장과 정체성 확립의 양면성이 이 영화의 주요 테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러한 테마들을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모두 골고루 건드린다. 세 가지의 테마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율리시스라는 매력적인 케릭터를 디자인한 결과다.
2. 쿰비아(cumbia)란?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쿰비아’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이런 하위문화가 한 때 이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 없다>라는 영화가 내게 준 선물 같았다. 율리시스로 표현한 하위 문화는 실제로 멕시코 몬테레이에 존재했고, 이 문화에 소속된 사람들을 “촐롬비아노(Cholombiano)”라고 불렀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조직범죄와 연관되어 터부시되며 지금은 촐롬비아노 문화가 사실상 사라졌다고 한다. 정말이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세계는 참 많은 것 같다.
율리시스와 갱단이 즐겨 듣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춘 쿰비아(Cumbia)는 음악과 춤의 한 장르이다.
본래는 콜롬비아가 원조인데, 콜롬비아보다 멕시코에서 쿰비아의 대중적인 인기가 많다. 멕시코에서도 영화의 배경인 몬테레이에서 굉장히 인기 있는 장르라고 한다.
쿰비아는 토속적인 타악기가 내는 경쾌한 리듬에 맞춰, 귀에 박히는 듯한 아코디언의 연주가 들어가고, 스페인풍의 멜로디와 가사가 결합된 것이 특징이다.
쿰비아 춤은 절제된 동작으로 화려함을 표현하는 느낌이 든다.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같이 열광하기보다는 관객으로서 매료되고 빠져든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짐작건대 영화를 보고 쿰비아 영상을 찾아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3. 주인공 역할 배우 : 후안 다니엘 가르시아 트레비뇨
영화 속 주인공 율리시스를 연기한 배우의 이름은 후안 다니엘 가르시아 트레비뇨(Juan Daniel García Treviño)다. 매우 절제되고 현실적인 그의 표정과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후안 다니엘 가르시아 트레비뇨는 마약상이었던 아버지 탓에 안정적인 유년시절을 보내지 못하고 5학년 때 학교를 중퇴했다. 영화 <나는 여기에 없다>의 주인공 역할에 캐스팅되었을 때 그는 16살이었는데, 당시 용접과 건설 막노동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를 찍기 전까지 연기 경험은 전무했다고 하는데, 힘을 빼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는 내면의 깊이가 짧은 인생에서 겪은 수많은 우여곡절에서 온 것 같은, 감사하면서도 슬픈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지금은 배우와 더불어 가수로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성공적인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도 좋은 활동을 이어가길 응원하고, 기대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을 포스팅 ※
넷플릭스 영화 추천 <쏘리 투 보더 유> : https://averagejoe.tistory.com/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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