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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통이 빨간색인 이유와 여러 이색 우체통

by 저피 2020.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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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쓰레기통 옆에 설치된 비슷한 크기의 빨간색 우체통이 눈에 들어왔다. 쓰레기통이 그곳에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우체통이 있는 줄은 몰랐다.

 

우체통이 빨간색인 이유

 

늘 아날로그 감성을 추구한다고 떵떵거렸지만, 결국엔 사용하는 쓰레기통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겸연쩍은 마음에 괜히 투함구에 손을 넣어도 보았다. 생각보다 틈이 좁아서 또 한 번 놀랐다. 마지막으로 우체통에 편지를 넣어본 게 언제였는지 곧바로 기억나지 않았다.

 

 

 

왜 아직도 우체통이 있나?

사실 지금도 우체통은 필요 이상으로 많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통신은 이미 다른 수단을 이용하고 있고, 꼭 우편을 보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우체국에 간다. 우편이 주요한 통신 수단이었던 어린 시절엔 언제나 집안에 봉투나 우표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정사업본부에서 과감하게 우체통 개수를 줄이지 못하는 것은 감정적인 이유인데, 기성세대에게 우체통은 꼭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싶은 아날로그 감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거리에 우체통이 있는 이유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우체통에 들어가는 설치비, 연간 유지 및 보수비, 그리고 수거하는 데에 드는 인건비에 비하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우체통 안에 편지보다는 담배꽁초나 쓰레기가 들어있는 경우가 더 많아 문제라고 한다.

 

명동 우체통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서울 명동에 위치한 한 우체통은 하도 쓰레기가 많이 발견되자, 4개 국어(한국어, 중국어, 영어, 일본어)로 ‘우체통’이라 적고,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No Trash’ 문구까지 붙인 것도 모자라 파출소 앞으로 위치를 옮겼다고 한다. 우리가 이토록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음 세대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건이다. 

 

 

 

우체통이 빨간색인 이유

우체통이 빨간색인 이유

재밌는 사실은, 우체통이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된 것도 우체통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조선후기에 사용했던 우체통은 나무로 만든 사각함이었고, 채색은 하지 않았다.

 

일본강점기 때 비로소 빨간색을 입게 되었는데, 일본도 원래는 흙색을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편(郵便)의 ‘편(便)’을 ‘변(便)’으로 읽은 사람들이 화장실로 착각해 볼일을 봐서, 야간에도 잘 보이는, 눈에 잘 띄는 적색으로 바꾼 것이다.

참고로 신호등의 초록색이 만국 공통이 아니듯, 우체통도 모두 빨간색은 아니다. 중국과 아일랜드에서는 초록색을 사용하고, 터키, 그리스, 오스트리아는 노란색을 사용한다. 미국, 러시아, 북한의 우체통은 파란색이며, 에스토니아는 주황색 우체통을 사용한다. 여하튼 우체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면서도 쓰레기통으로 사용하는 오늘날의 몇몇 몰상식한 사람들에게는 변명거리조차 없다. 

 

 

 

세계 곳곳의 이색 우체통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체통을 되살리려 한다. 쓸모가 적어진 우체통을 되살리기 위해 여러 이색 우체통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이제는 대부분이 아는 ‘느린 우체통’이 있다. 1년 후에 편지가 발송되는 우체통으로 ‘기다림’이라는 아날로그 감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울산 간절곶에는 소원이 담긴 엽서들을 배달하는, 세계 최대 크기의 ‘소망 우체통’이 있고, 파주시 임진각에는 통일과 화합의 이야기를 엽서에 적어 넣으면 6.25 기념행사나 광복절 행사 때 전시하는 ‘이산가족 우체통’이 있다.

빨간색이 아닌 여러 이색 우체통

경산시 서부1동의 ‘우리동네119 우체통’, 구리시의 ‘행복 우체통’, 남해군 서면의 ‘내 이웃 찾아줌(zoom) 우체통’, 부산 북구 구포1동 ‘행복드림 우체통’은 모두 같은 기능을 하는 우체통인데 생활이 어렵지만 직접 대면하고 도움을 요청하기가 어려운 잠재적 복지대상자들의 사연을 제보할 수 있다. 군대에 있는 소원수리함과 비슷하다.

 

 

 

우체통의 철거 기준

아쉽게도 그런다고 일반 우체통의 사용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계속해서 줄어들기만 한다. 우체통의 철거 기준은 하루에 수거하는 편지가 3통이 되지 않았을 때다. 다른 말로 하면 하루에 수거하는 편지가 고작 3통밖에 되지 않는 우체통까지 우리의 집착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오물을 안은 채 애물단지마냥 방치된 우체통이 많다. 우체통의 사용을 강요할 수는 없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기다림의 미학이라든지 아날로그 감성이지 우체통이 아니다. 제대로 품을 수 없으면 놓아주는 것이 도리다.

 

우편을 부정하는 것도, 우편함을 없애자는 것도 아니며, 우체통을 모두 철거하자는 주장도 아니다. 단지 똑바로 사용하지도 관리하지도 못하는 것들은 더 줄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제는 더 이상 우체통이 우리의 편지가 아닌 미련까지 기다리게 하지는 말자는 말이다. 쓰레기통이 되어버린 우체통이 아니라, 이토록 우체통을 되살리려는 우리의 간절한 진심을 다음 세대에 잘 전해보자. 이색 우체통은 좋은 대안이다. 대안 없이 방치된 수천 개의 유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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