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이쑤시개는 우리나라의 큰 자랑이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막바지였던 1966년에 경향신문은 ‘이것도 팔리고 있다’는 기획기사를 연재했다. 예상보다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특이 수출품들을 소개하는 재미있는 기사였다. 그 첫 번째 주제가 바로 이쑤시개였다(2편은 다람쥐였다).
‘외화벌이 꼬마 첨병(尖兵)들’이라는 적절하면서도 무척이나 귀여운 부제가 달린 기사는 한국 이쑤시개가 일본에서 나무를 가져와 보세가공으로 미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연말까지 20만 불 수출을 기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최전방에 수십억 개 이쑤시개가 장창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무척이나 귀엽지 아니한가...
그로부터 10년 후인 77년에는 이쑤시개 수출액이 200만 불로 10배 증가했으며, 78년에는 300만 불 수출을 기대한다는 내용이 다시 경향신문에 실렸다.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해도 대부분이 한국산 이쑤시개의 황금기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쑤시개는 우리에게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이따금 비행기 안에서나 만나고, 본래의 용도보다는 포크 대용으로 과일이나 치즈, 빵조각 등을 대접할 때 더 많이 사용한다.
이쑤시개는 치아건강에도, 환경에도 해롭다는 것이 상식으로 자리 잡았고, 미미하지만 치실이나 치간칫솔 사용률이 계속 증가하면서 그 자리를 더욱 위협받고 있다. 매일 1천만 개의 녹말 이쑤시개를 만들고 있다던, IMF 불황을 이겨냈다던 기업도 자취를 감추었다.
이쑤시개의 의미
‘할아버지의 시계’라는 노래가 있다. 할아버지가 태어난 날 증조부모가 산 시계가, 할아버지가 결혼하시던 날 정겹게 종소리 울리던 그 시계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부터 더 이상 가지 않음을 슬퍼하는 손주의 노래다. 나는 비슷한 마음으로 할아버지의 이쑤시개를 생각해본다.
아마 할아버지는 어릴 적 일제 강점기 때 처음으로 이쑤시개를 접하셨을 것이다. 그건 당대 지성인의 필수품이었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가 광복을 맞이하며 상상한 미래의 자기 모습 중에는 ‘배불리 한 끼 식사를 하고, 이쑤시개로 마무리 정돈을 하는’ 신사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쑤시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발명품 중 하나다(부처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네안데르탈인 이 나무로 이를 닦았다). 할아버지 개인의 삶에서도 그만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한테 “요지는 양지의 일본식 표현이라서 이쑤시개를 요지라 부르는 건 김치를 기무치라 부르는 거랑 같아요”라던지 “앞으로 이쑤시개 말고 치실을 쓰세요”라는 말 따위 하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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