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는 시기가 오면 감수성이 예민해진다. 환절기에 조심해야 하는 건 감기만이 아니다. 울컥하며 차오르는 눈물도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영화관에서 MG새마을금고의 ‘영화관에 찾아온 시’ 광고를 봤다. 윤보영 시인의 <어쩌면 좋지>를 낭송하는 광고였다. 낭송자는 배우 김상중이었다. 광고를 보며 울컥했다. 시도 좋았지만, 김상중의 낭송이 너무 좋아서였다.
‘너에 대한 생각을 내보내려고 창문을 열었는데, 오히려 창문 밖에 있던 네 생각들이 밀려 들어오는 걸 어쩌면 좋겠냐’고 하는 화자의 애절함이 낭송자의 목소리에 가득 담겨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날 본 영화는 손에 꼽을 만큼 좋은 영화였는데, 영화관을 나서는 내 머릿속에는 온통 광고뿐이었다.
조니 캐시의 In My Life
지난 주말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카페에 가서 자리를 잡은 지 30분 정도 지나자 어느새 카페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공교롭게도 내 앞 테이블과 옆 테이블에는 소개팅을 하는 남녀가 앉았다. 테이블 간의 간격이 좁다 보니 소개팅 특유의 어색한 분위기와 대화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었다. 며칠 전에 문득 생각나 전곡 재생을 해놓은 조니 캐시(Johnny Cash)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한 곡에서 또 ‘울컥’해버렸다. <In My Life>라는 노래였다.
원곡의 주인은 비틀즈다. 존 레논이 가사를 쓰고, 레논-메카트니가 공동 작곡을 했다. 사실 누가 작곡을 했는지는 사실관계가 불분명한데, 폴은 본인이 작곡을 했다 하고 존은 메카트니가 하모니 정도만 도왔다고 했다.
여하튼 존 레논이 가사를 쓴 것은 확실하다. 1965년에 발표가 되었으니 20대 중반에 쓴 가사다(존 레논은 1940년생이다). 한편 1932년생인 조니 캐시는 타계 1년 전인 2002년에, 그러니까 만 70세의 나이에 이 노래를 불렀는데 원곡과 느낌이 전혀 다르다.
In My Life 가사 의미
“In My Life”
There are places I remember
All my life though some have changed
Some forever not for better
Some have gone and some remain
All these places have their moments
With lovers and friends I still can recall
Some are dead and some are living
In my life I’ve loved them all
But of all these friends and lovers
There is no one compares with you
And these memories lose their meaning
When I think of love as something new
Though I know I’ll never lose affection
For people and things that went before
I know I’ll often stop and think about them
In my life I love you more
Though I know I’ll never lose affection
For people and things that went before
I know I’ll often stop and think about them
In my life I love you more
In my life I love you more
가사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내 인생에는 많은 추억이 있고, 이를 함께한 연인과 친구들이 있으며, 이들을 모두 사랑했지만 지금의 너를 더 사랑한다.’ <In My Life>는 최종 메시지는 후자에 있지만, 핵심은 전자에 있는 노래다. 즉, 결국엔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근간은 20대 중반의 존 레논이 느끼는 유년시절에 대한 향수인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를 황혼의 조니 캐시가 부르면 유년시절이 인생 전반으로 확장되고, 향수가 심오한 철학적 회고로 심화되어 다가온다. 20대의 존 레논에 비해 70대의 조니 캐시는 얼마나 많은 장소를 기억하고 있겠으며(‘There are places I remember’), 얼마나 많은 이들을 떠나보냈겠으며(‘Some are dead and some are living’), 또 얼마나 그들을 그리워하겠는가(‘I know I’ll often stop and think about them’).
단순히 나이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서른 즈음에 이미 어느 60대 노부부의 공감까지 샀던 김광석을 떠올려보라. 나이보다는 가수의 목소리와 표현력에서 느껴지는 진정성 때문에 울컥하는 것이다. 김상중의 <어쩌면 좋지>도 그랬다.
<In My Life>를 부르는 조니 캐시의 목소리는 상당히 지쳐있다. 때때로 목소리가 갈라지기도 하고 바이브레이션도 매끄럽지 않다. 박자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소위 말하는 ‘박자를 가지고 논다’는 느낌보다는 ‘박자를 놓친다’는 느낌이 든다. 이 곡에서 조니 캐시는 힘없고 지친 황혼의 자신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재녹음하거나 편집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는 인생의 온갖 풍파를 견딘 노가수를 만나게 되고, 그래서 가사의 의미를 더욱 확장해서 느낄 수 있다.
울컥하고 싶은 날에 추천한다. 그 전에 ‘음지의 엘비스 프레슬리’라 불렸던, 검은색 수트를 쫙 빼입고 머리를 한껏 세운 조니 캐시의 전성기를 먼저 보고 이 노래를 듣기 바란다.
조니 캐시의 <In My Life>는 김형석 교수의 수필집 <백년을 살아보니>나 프랑크 시나트라의 노래 <My Way>에서도 느껴지는 경외로움이 있는 작품이다. 나도 죽기 전에 언젠간 확신에 찬 인생론을 세상에 발표해보고 싶다. 누군들 안 그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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