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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피카

신호등을 건너며

by 저피 2020.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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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불이 켜지기만을 멍하니 기다리고 있다. 
어렸을 적엔 신호등이 모두 전구식이었는데 지금은 LED식으로 바뀌었다. 차량 신호등보다도 보행자 신호등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전구일 때는 보행자 기호는 검은색이고, 그 배경에 빨간불 또는 파란불이 들어왔다. 지금은 배경이 검은색이고, 보행자 기호에 LED다이오드가 촘촘히 박혀 빛을 낸다. 전구는 대낮에 역광을 받으면 불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LED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다.

 

신호등을 건너며

 

LED와 전구를 사용하기 전, 최초의 신호등은 가스를 사용했다. 1868년 런던의 국회의사당 앞에 설치되었는데, 가스폭발이 잦았다. 수동으로 작동하는 교통경찰과 주위를 지나다니는 보행자의 인명피해로 인해 금방 석유로 대체되었다.

 

전기를 사용하는 신호등은 1914년에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최초로 설치되었다. 

 

 

빨간불이 꺼지고 파란불이 켜진다. 엄밀히 말하면 초록불이다. 나는 노란불이 꺼지고 빨간불이 켜진 차량 신호등 아래를 수평으로 통과한다.

신호등에서 가장 중요한 신호인 ‘정지’가 빨간색을 입게 된 이유는 적색의 파장이 제일 길기 때문이다. 차량/보행 신호등이 생기기 이전에 이미 철도 신호등에서 빨간색은 정지를 뜻하게 되었는데, 기차는 멈추는 데에 긴 시간이 필요한 만큼 조종사가 최대한 멀리서부터 감지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노란불은 몇십 년 동안 빨간불과 초록불만 사용하다가 1920년이 되어서야 탄생하게 되는데, 기존의 두 신호 색깔과 확실히 구분될 뿐만 아니라, 빨간색 다음으로 긴 파장을 갖고 있어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진행’을 의미하는 초록불은 원래 하얀색이었으며, 여전히 보행자 신호등에는 하얀색을 사용하는 국가들도 있다. 하얀색이 초록색으로 바뀐 이유는 잇따른 사고들 때문인데, 예컨대 빨간불의 렌즈가 빠져 하얀불로 인식되거나, 야간에 별빛을 하얀불로 착각하는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녹색은 노란색 다음으로 파장이 길기도 하거니와, 기본적으로 자연을 상징하는 색깔로서 자유로움, 조화, 허용 등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초록색 LED 다이오드가 박힌 보행자 기호를 응시하며 횡단보도의 마지막 금을 밟는다.

문득 저 기호가 내밀고 있는 앞발이 오른발인지 왼발인지가 궁금해진다. 이전까지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만큼 기호에 특징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독일 베를린의 보행자 신호는 매우 독특하다. 팔다리가 짧고, 중절모를 쓴 통통한 아저씨의 이름은 ‘신호등 사람’이라는 뜻의 ‘암펠만’이다. 구동독 교통심리학자 칼 페글라우가 남녀노소에게 친근하면서, 색이 들어가는 면적이 가장 넓게(그래서 팔다리가 짧고 배가 나왔던) 만든 아이콘이다. 암펠만 신호등은 독일이 통일된 후 철거되기 시작했는데, 바뀐 신호등을 보고 ‘우리 동네가 예전 같지 않다’는 구동독 주민들의 캠페인에 의해 다시 설치되었다. 이렇게 되살아난 암펠만은 오늘날 단순히 구동독의 문화가 아니라 베를린의 상징으로써 독일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대만에서는 ‘작은 초록색 인간’이라는 뜻의 ‘Xiaolüren(小綠人)’이라는 신호등을 사용하는데, 특이하게도 동적이다. 초록불이 들어오면 사람 모양의 귀여운 신호가 걸어가기 시작한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보는 이 신호등이, 하루아침에 정적인 신호로 바뀌었다고 상상해본다면 ‘암펠만 살리기 운동’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동독인들의 심리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보행자 신호등은 어떠한가? 지금의 모양에 애착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까? 어느 날 그 모양이 바뀌었을 때, 마치 우리의 문화양식을 잃은 것처럼 슬퍼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매력 없는 그 모습이 내 등 뒤에서 빨간색 빛을 낸다. 

 

 

얼마 가지 못해 새로운 신호등을 마주하며 다시금 생각에 잠긴다. 신호등의 노란불에 대해서.

초록불은 가라, 빨간불은 서라는 뜻이다. 맥락을 제거하고 나면 결국 초록불은 yes, 빨간불은 no다. 가능, 불가능이고 1과 0이다. 그렇다면 노란불은? 우리는 이를 ‘갈 수 있지만, 곧 갈 수 없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yes이지만 곧 no이고, 1이지만 0이 될 거라는 뜻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노란불은 초록불이면서 동시에 빨간불이고, 초록불이 아니면서 동시에 빨간불도 아닌 상태다.

 

이러한 불확정적 상태를 가시화한 상징이 바로 노란 신호등이다. 초록불과 빨간불은 지시하는 바가 명확하다. 가라, 서라. 반면 노란불은 이분법적인 사고체계에 갇힌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무언가를 지시한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적으로 ‘갈 수 있지만 곧 갈 수 없다’로 밖에 해석하고 이용하지 못하며, 상황에 따라 결국엔 초록불(정지선을 떠나는 찰나에 노란불을 맞이한 경우)과 빨간불(신호등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상태에서 노란불을 맞이한 경우) 중 하나로 받아들인다.

 

시각이 있고, 색맹이 아니며, 색을 이용하는 상징에 익숙하면서 인간과는 다른 사유체계를 가진 외계인이 존재해 그를 만난다면(!), 그에게는 노란불이 명확하고 독립적인 어떠한 상태를 지시하는 분명한 상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외계인을 만나기 전에 노란불은 없어질 것이다. 가스등과 전구가 사라진 것처럼. 그리고 머지않아 신호등 자체가 이 시대의 유물이 될 것이다. 도로에 ‘신호’의 필요성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최초의 신호등은 교통경찰에 의해 작동되었다. 경찰이 교통 상황을 보며 자의적인 판단으로 초록불 또는 빨간불의 등을 켰다.

 

1920년대 초반에 전기식 신호등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불을 바꾸는 타이머 방식으로 자동화가 되었다. 사실 방식만 두고 본다면, 시간을 기준으로 삼는 것보다 교통 상황을 기준으로 삼는 예전 방식이 더 적절했다(그래서 미국에서는 운전자가 자동차 경적을 울리면, 그 소리를 감지해 신호를 바꾸는 방식도 시도해보았으나, 끊임없는 소음에 대한 동네 주민들의 항의로 얼마 못 가서 철거됐다).

 

1960~70년대에 들어와 CCTV와 컴퓨터의 발달로 교통 상황에 따라 신호가 바뀌고, 필요한 경우 교통관제센터에서 원격으로 조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제 곧 사라질 전망이다. 각자의 운행 속도와 방향 등을 실시간으로 클라우드에 공유하는 커넥티드카가 등장할 것이고 신호등의 종말은 서서히 시작될 것이다. 다보스포럼에서는 2026년에 신호등이 없는 스마트시티가 최초로 등장할 것이라 예견했다. 

 

그렇다면. 신호등 불빛에 따라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현대인이 더 수동적인 사람일까, 한순간도 설 필요 없이 교묘하게 서로를 비켜가는 자동차에 몸을 싣는 미래인이 더 수동적인 사람일까. 

 

신호등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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