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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유래와 굴뚝의 상징

by 저피 2020.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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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굴뚝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개 편안하고, 포근하고, 따뜻한 것이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는 종일 친구들과 뛰놀던 아이들에게이제 그만 놀고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을 시간이야라고 하는 애정 어린 신호였다.

 

크리스마스와 굴뚝

 

한국전쟁이 배경이 되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굴뚝 연기가 굶주린 피난민들에게는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 마을엔 아직 사람들이 사는구나. 아마 비교적 안전한 곳일 테고, 먹을 것도 있는 모양이다하는 생각이 드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크리스마스의 유래

굴뚝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도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고 푸근한 산타 할아버지 것이다.

 

산타의 모델이 성 니콜라우스는 딸의 결혼자금이 부족해 괴로워하던 아버지를 남몰래 돕기 위해 밤마다 그가 사는 집의 굴뚝으로 금을 떨어뜨렸다고 한다. 금 조각은 물에 젖어 말리기 위해 벽난로에 걸어 둔 양말 속에서 발견되었고, 이것이 훗날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이들이 벽난로에 양말을 걸어 놓는 전통과, 산타 할아버지는 굴뚝을 타고 내려온다는 전설이 되었다.

 

어렸을 우리 집엔 굴뚝이 없는데 어떻게 산타 할아버지가 오지하는 걱정이 자연스레 들었다. 하지만 이는 현대식 아파트에 살던 나만이 가진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원래부터 산타가 드나들 만한 굴뚝이 없었다.

 

크리스마스 유래

 

우리나라 굴뚝과 서양 굴뚝의 가장 차이는 위치다. 이유는 난방을 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닥을 데우는 난방식이 보편적인 우리나라의 굴뚝은 대부분 바깥에 있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열기가 방바닥 아래에 있는 구들장을 덥힌 굴뚝으로 나간다. 그러니까 열기나 연기가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반면, 안의 공기를 데우는 난방식이 보편적인 서양의 굴뚝은 대개 안에 설치된 벽난로와 그대로 연결되어 집의 일부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산타가 다른 경로를 찾아야만 했을 것이다.

 

동양과 서양은 난방을 하는 시간도 조금 다르다. 일반적으로 서양에서는 활동이 많은 낮에 난방을 하고, 저녁엔 다소 서늘한 방에서 두꺼운 옷을 입고 잔다. 크리스마스 동화나 영화를 보면 아이들이 수면 모자를 쓰고 있지 않던가.

 

반면 동양에서는 낮에 두꺼운 옷을 입고 추위를 이겨내다가, 잠들기 전에 난방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만약 산타가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굴뚝을 보자마자 기어들어 갔다면, 한순간에 크리스마스 동화는 끔찍한 호러물이 되는 것이다.

 

깊은 밤중에 볼록한 배를 접어가며 겨우 좁은 굴뚝 안으로 기어들어 갔더니 아직껏 구들장이 펄펄 끓고 있을 아닌가. 착한 조선 아이에게 선물을 주겠다는 집념으로 구들장의 살인적인 열기를 견뎌냈다고 하자. 그래 봤자 산타는 결국 안의 벽난로가 아니라 밖의 아궁이로 기어 나오게 되고, 방금까지 자기가 목숨 걸고 구들장을 지난 것이 사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허무와 깊은 좌절감에 빠질 것이다.

 

쿠키와 우유보다 훨씬 맛있는, 조선 소년이 부뚜막에 올려놓은 전병과 막걸리에는 차마 손도 없을 것이다.

 

 

 

굴뚝의 상징

독일에서는 산타만큼 굴뚝 청소부도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1727년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최초로 정기적인 굴뚝 청소를 의무화하는 조례를 발포했는데, 그즈음 빈번하던 화재가 바로 굴뚝 내벽에 앉은 검댕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였다. 그래서 굴뚝 청소부는 단순히 굴뚝을 청소하는 사람이 아니라, 화재를 막고 목숨을 구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고, 차츰 인기 있는 전문직업인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도 독일인들은 아침에 굴뚝 청소부를 만나는 것을 길조라 생각한다. 영국에서도 결혼식 신부가 굴뚝 청소부의 키스를 받는 것을 행운으로 여겨, 굴뚝 청소부를 고용하기도 한다.

 

굴뚝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하지만 굴뚝 청소부가 행운의 상징만은 아니다. 정반대의 이미지도 갖고 있다.

 

산업혁명기 영국, 이탈리아, 벨기에, 프랑스 등지에서는 굴뚝 청소부들이 체구가 작은 어린이조수들을 데리고 다니며, 직접 굴뚝 안으로 들어가 내벽을 청소하게 했다. 아이 중에는 버려진 고아가 많았다. 미성년자에 대한 노동력 착취였다. 굴뚝 안에 끼어서 질식사하는 사고가 적지 않았다.

 

1834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그럴듯한 보호법이 나왔다. 14 미만은 굴뚝 청소를 없고, 청소부당 조수는 최대 6명까지만 거느릴 있으며 조수들은 판사 앞에서 직접 의사를 밝혀야 했다. 청소부끼리 조수를 위탁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더디긴 했지만 법적인 보호와 사회적인 문제의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청소 도구의 발전으로 어린이 조수들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개인적으로 내게 굴뚝은 행운과는 상관이 없다. 행복과도 조금 거리가 있다. 그보다 내게 굴뚝은 건물 안에 사람이 산다는 상징 같은 것이었으며, 따라서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굴뚝이 있는 집에 살아본 적이 없는데도 그랬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 집을 그릴 때면, 사람은 그려도 굴뚝은 그렸다.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도 그려 넣었다. ‘아니 굴뚝에 연기나랴 말도 불을 누군가가 있었다는 전제로 한다. 굴뚝에 연기가 나면 일단 거기에 누군가가 산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젠가부터 상상 건물들에는 굴뚝이 없다. 당연한 것들이 점차 사라지고, 새로운 당연함들을 만들어가며 나도 모르게 굴뚝이 없는 건물에 익숙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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