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 주머니 속에는 언제나 5~6개의 이쑤시개가 들어간 작은 지퍼백이 하나 있다. 이쑤시개를 두고 외출하시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할아버지는 이쑤시개를 ‘요지’라 부르신다.
이쑤시개 유래
요지는 ‘버드나무 가지’를 뜻하는 양지(楊枝)의 일본식 표현인데, 그 유래는 다름 아닌 불교에서 찾을 수 있다. 부처는 어느 날 입 냄새가 심한 제자들에게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닦으라 했고, 이 가르침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며 고려인들은 칫솔을 ‘양지’라 부르기 시작했다.
불교를 먼저 받아들인 우리나라의 ‘양지’가 일본으로 넘어가 요지라 불리게 된 것이니, 할아버지는 단어를 역수입하신 것이다! 굳이 이쑤시개를 달리 부르자면 요지보다는 양지가 정확하다. 우리가 하루에 세 번씩 하는 양치질도 ‘양지’에 접미사 ‘질하다’가 붙은 ‘양지질하다’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우리가 사용하는 이쑤시개는 당대의 ‘칫솔’인 양지와는 다르며, 버드나무로 만들지도 않는다. 이쑤시개는 보통 자작나무로 만드는데, 그 이유는 다른 나무에 비해 단단하고 색이 희며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20m에 달하는 자작나무가 수만 개의 이쑤시개로 재탄생하기까지는 다음의 과정들을 거친다.
이쑤시개 만드는 법
숲에서 자작나무를 벤다. 그리고 공장으로 가져가 박피를 한다. 거친 나무껍질을 두세 차례 벗겨내 속살을 드러낸다. 그다음 마치 일식집에서 무를 돌려 깎듯이 1~2mm 두께의 판상 목재로 얇게 절삭한다. 양 끝을 뾰족하게 다듬고, 긴 단판을 이쑤시개 크기로 일정하게 자른다.
이제 모양새는 어느 정도 갖춰졌다. 허나 아직은 수분을 머금어 물렁하다.
이를 쑤실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질 때까지 3~4시간 고온에서 건조한다. 그다음 동일한 시간만큼 레미콘 트럭에 달린 것과 비슷한 대형 회전 통에 탈콤파우더(활석분)를 넣고 함께 돌려 매끄럽게 만든다. 부러진 것들을 체로 걸러내고 공기로 불순물을 제거한다. 박스로, 혹은 개별로 포장한다. 시장으로 나와 기다리고 계시는 할아버지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자, 이쑤시개의 생애주기는 이제 겨우 절반을 지났다. 식사를 마친 할아버지는 이쑤시개를 사용하시고, 여느 때처럼 식당에 버리고 나오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쑤시개는 끝을 뭉뚝하게 부러뜨리고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려야 한다. 하지만 식당에 버려진 이쑤시개들은 흔치 않게 음식물 쓰레기와 섞여버린다.
이쑤시개 역사
1993년도부터 이쑤시개가 섞인 음식물 쓰레기를 사료로 먹는 돼지의 폐사율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경기도청은 구내식당에서부터 이쑤시개 금지 운동을 벌였다. 정부는 1994년 8월에 음식점의 이쑤시개 사용금지 방침을 전격 발표했지만, 국내 제조업자들의 거센 반발로 이내 한 보 후퇴했다.
이듬해에 환경처는 일종의 타협안을 발표했다. 95년 2월부터 이쑤시개를 식당 식탁에 두는 것은 금지하지만, 출입구에 두는 것은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과태료를 최대 300만 원까지 부과하였지만, 사실상 실효성이 거의 없는 방침이었다. 기준도 모호하고 의지도 결여된 방침이었으니, 제대로 이행될 리가 만무했다.
머쓱해진 환경처는 3월 달에 사용 금지조처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단속 시점을 늦추기로 했고, 며칠 후에는 ‘과태료 부과 등 강제적인 방법보다는 행정지도 위주로 이쑤시개 사용을 자제하는 분위기를 장착시켜 나가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했다.
의심의 여지없이 환경처의 법적인 제재는 실패했다.
하지만 정부는 더 큰 그림을 보고 있던 것이었을까! 법적인 제재가 실패하는 동안에 이미 대중의 인식은 크게 바뀌고 있었다.
이쑤시개에 대한 논란이 번지면서 이제 이쑤시개 사용에 대한 의구심은 비단 환경오염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이쑤시개는 잇몸에 상처를 내고, 치아 사이를 벌려 오히려 음식물이 더 끼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치과의사들의 경고와 함께 이쑤시개보다는 치실 사용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었다.
이쑤시개를 비치해 두는 것은 곧 식당의 이미지와도 직결되는 문제가 되었다. 호텔 레스토랑과 같이 음식의 맛만큼이나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한 고급 식당들 사이에서는 친환경 녹말 이쑤시개가 유행처럼 번져갔다. 1997년 IMF 당시에는 ‘불황을 이긴다’는 제목으로 수분에 분해되는 녹말 이쑤시개를 개발한 기업이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자작나무 이쑤시개는 그렇게 잊히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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