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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리뷰

<죽은 시인의 사회> 리뷰 - 제대로 살고 있는가?

by 저피 2020.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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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 폴로이 혹은 카르페 디엠

사람들은 죽을 때 ‘껄껄껄’하며 죽는다고 한다. 이는 통쾌하게 웃으며 죽는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껄껄껄’은 우리가 죽는 순간에 후회하는 세 가지를 말한다. ‘더 베풀 걸, 더 용서할 걸, 그리고 더 재미있게 살 걸’. <죽은 시인의 사회>는 세 가지 중에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이루기 가장 어려운 세 번째 후회 ‘더 재미있게 살 걸’에 관한 책이다.

 

재미있게 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 단순히 쾌락추구적인 삶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재미’란 매우 주관적인 가치다. 누군가에겐 재미있는 일이 타인에게는 가장 따분한 일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무의미해 보이는 일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따라서 ‘재미있게 살 걸’이라고 하는 심리의 본질은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일 것이다.     

  

 

웰튼 아카데미 학생들은 ‘아버지’로 상징되는 초자아에 의해 극도로 억압된 수동적인 삶을 살아간다. 단 한번 의문을 가지지 않은 채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미래를 그려나간다. 토드 앤더슨은 닐 페리에게 말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그를 5달러 98센트라고 불렀다고.

 

사람 몸을 단순히 화학 물질로 계산하면 몸의 값어치가 그 정도밖에 안 나가는데,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토드의 값어치는 평생 5달러 98센트임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닐 페리 역시 마찬가지다. 아들을 의사로 만들기 위한 아버지의 계획에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살아져’왔다. 웰튼 아카데미에 새로 부임해 온 존 키팅 선생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키팅 선생은 학생 4명을 불러 운동장을 돌게 한다. 네 학생은 영문도 모른 채 걷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네 사람의 걸음걸이가 다 다른데 시간이 갈수록 비슷해진다. 게다가 키팅 선생이 그들의 걸음걸이에 맞춰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더욱 하나가 된 모습으로 걷는다. 키팅 선생은 이렇게 학생들로 하여금 여태껏 사유하지도, 의문을 품지도 않는 삶을 살아 온 수동적인 그들의 모습을 직접 보게 만든다. 그리고 ‘어리석은 군중’을 뜻하는 ‘호이 폴로이’로 살아가지 말 것을 당부한다.      

 

 

키팅 선생은 수업 첫날부터 학생들을 데리고 웰튼 아카데미 기념 전시관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수십 년 전에 학교를 떠난 졸업생들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말한다. “이 사람들 가운데 한평생 소년 시절의 꿈을 마음껏 펼쳐 본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대부분 지난 세월을 아쉬워하며 세상을 떠나 무덤 속으로 사라져 갔을 것이다. 능력이, 시간이 없어서 그랬을까? 천만에! 그들은 성공이라는 전지전능한 신을 뒤쫓는 데 급급해서, 소년 시절 품었던 꿈을 헛되이 써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지금은 땅 속에서 수선화의 비료 신세로 떨어지고 만 것이지.” 즉, 그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공한 사람이 된다 하더라도 그 시발점이 본인의 꿈이 아닌 아버지(초자아)의 명령이라면 5달러 98센트짜리 비료가 되는 건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요컨대 <죽은 시인의 사회>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호이 폴로이라는 덩어리의 일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주체적인 ‘나’가 될 것인가. 하지만 이 질문에는 조건이 덧붙여진다. 바로 시간이다. 결정을 내릴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죽은 시인의 사회’ 마지막 모임에서 토드가 처음으로 발표한 자작시를 통해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자작시의 일부이자 토드가 회원들에게 함께 읽도록 부탁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만으로는 해결되는 것이 없다. 그 마음이 행동으로 발아되어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 것이다. 실천하지 않는 꿈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아님을, ‘언젠가 다가 올’거라 막연하게 믿는 새날은 결코 오지 않음을 ‘죽은 시인의 사회’가 독자들에게 외치는 것이다. 

 

 

초반부터 학생들이 키팅 선생을 ‘선장님’이라 부르는 것은 일종의 복선이다. ‘선장님’이라는 칭호는 월트 휘트먼이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추모하기 위해 쓴 시 <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에서 온 것이다. <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에서 화자는 무서운 항해가 끝난 뒤에 갑판 위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선장’을 목 놓아 부른다. 깃발이 당신을 위해 펄럭이고, 나팔이 당신을 위해 울리고 있는데 선장은 아무 대답이 없음을 한탄하며, 그래도 전리품을 챙겨 슬픔의 발걸음으로 선장이 쓰러져 죽은 갑판을 밟는다.

 

남북전쟁(무서운 항해)을 승리로 이끌며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선장)이 존 윌크스 부스에 의해 암살당한 사건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화자가 챙기는 전리품은 노예해방이 이끌어 낸 평등사상일 것이다. 시의 배경은 웰튼 아카데미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비록 닐 페리의 자살이라는 무서운 항해로 인해 키팅 선생은 해임을 당하지만 학생들은 웰튼 아카데미와 ‘죽은 시인의 사회’를 지키며 ‘카르페 디엠’이라는 전리품을 소중히 간직한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비슷하게 해석해볼 수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웰튼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아닌 독자들의 이야기다. 학생들의 꿈을 짓밟는 아버지도 결국 사회적 규범에 지나치게 얽매이거나, ‘성공’이라는 허상을 맹목적으로 좇도록 부추기는 우리의 초자아(superego)를 상징한다. 따라서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책(선장)은 언제 다시 읽힐지 모른 채로 책장에 꼽히겠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웰튼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자신을 빗대어 보고, 현재의 삶에 물음을 던졌던 경험(무서운 항해)을 통해 얻어낸 전리품(카르페 디엠)만큼은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이다.               


숲 속에 두 갈래의 길이 있었네,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골랐네,

그것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네. 

- 프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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