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음악을 잘 안 듣게 된다. 고집이라기보다는 어렸을 적만큼 새로운 음악이나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절로 플레이리스트에는 듣던 음악만 쌓이게 되고, 저변을 넓히지 않으니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추천해 주는 노래도 이미 아는 노래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역시 문화를 소비하는 데에도 일부분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요즘과 같이 평소에 듣는 음악에 질리는 매너리즘에 빠질 때면 써먹는 유용한 방법이 있다.
바로 각종 페스티벌의 라인업을 보거나, 음악 시상식의 수상자 명단을 보고 생경한 아티스트를 찾아 듣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얼마 전에 열린 2023 그래미 시상식(바로가기)에서 최우수 신인상(Best New Artist)을 수상한 사마라 조이(Samara Joy)를 찾아보게 되었고, 오랜만에 느끼는 신선한 감동에 포스팅까지 작성하게 되었다.
사마라 조이의 배경
사마라 조이는 1999년 11월 11일생으로 올해 만 나이로 23살이다. 재즈라는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아티스트 중 흔치 않은 나이다 보니 Z세대 재즈 싱어(GenZ Jazz Singer)라는 타이틀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사마라 조이는 뉴욕 브롱스에서 나고 자랐다. 조부모와 아버지가 가스펠 뮤지션이었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자연히 음악과 가까이 지냈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교내 재즈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을 했다.
그러다 미국 전역의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매해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리는 유명한 재즈 경연대회인 에센셜리 엘링턴 재즈대회(Essentially Ellington High School Jazz Band Competition & Festival)에서 최우수 보컬상을 수상하였다.
이를 계기로 사마라 조이는 엘라 피츠제럴드 장학생으로서 뉴욕 주립대(SUNY)에 보컬학과로 입학을 했으며, 재학 중에는 재즈 장르에서 매우 권위 있는 대회인 사라 본 인터내셔널 재즈 보컬 대회(Sarah Vaughan International Jazz Vocal Competition)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수상 이후 사마라는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전개했고, 2020년부터 틱톡에 올린 노래 영상이 바이럴을 타며 팬덤이 쌓이기 시작했다.
사마라 조이의 음악
사마라 조이는 2021년 7월에 본인의 이름을 딴 <Samara Joy>라는 데뷔 앨범을 냈고, 2022년 9월에 <Linger Awhile>이라는 제목의 2집 앨범을 냈다.
2023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신인상(Best New Artist)과와 더불어 2집 앨범 <Linger Awhile>이 최우수 재즈 보컬앨범(Best Jazz Vocal Album)상을 받았다.
사마라 조이의 음악은 전통적인 재즈와 더불어 R&B와 소울 요소가 가미된 스타일이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의 가창력이다. 스스로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하는 미국 3대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 사라 본(Sarah Vaughan),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를 연상케 하는 전통적인 재즈 창법을 구사한다.
사마라는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깊고 풍성한 성량에 고혹적인 재즈 음색을 지니고 있다. 중성적이지만 음역대가 넓고, 힘이 가득한 보컬이지만 음과 강약조절이 굉장히 섬세하며 프레이징이 애간장을 녹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들은 노래는 <Guess who I saw today>다. 사마라 조이의 노래는 아니다. 원곡은 1952년에 노래, 코미디, 춤이 어우러진 브로드웨이 공연이었던 <New Faces of 1952>에 수록된 곡이다.
워낙 명곡이다 보니 여러 재즈 가수들이 커버를 한 바 있으며, 지금껏 가장 대표적인 버전은 배우 겸 가수로 활동했던 낸시 윌슨(Nancy Wilson)이 1960년에 커버한 버전이었다.
<Guess who I saw today>의 가사를 읽으면 마치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단편집 같다. 밤 늦게 귀가한 남편에게, 자신이 오늘 그의 외도 현장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고생하는 남편을 걱정하듯 안부를 묻고 마티니를 한 잔 권하다가, “오늘 배가 고파 우연히 들린 프렌치 카페에서 무척이나 사랑에 빠진 연인을 봤는데 그게 바로 당신이었다”라고 알려주는 자못 슬픈 가사다.
사마라 조이는 그 슬픔을 정제된 감정으로 표현했다. 억울함 혹은 괴로움이 어쩌면 그 단계를 초월해 애석함 정도로 희석 또는 붕괴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그녀의 풍성하고도 부드러운 음색으로 감정을 절제하며 세련되게 부른 <Guess who I saw today>는 모순적이게도 듣는 이로 하여금 더 크나큰 슬픔을 유발한다.
사마라 조이 향후 활동에 대한 기대
그래미를 수상한 직후 한 인터뷰에서 사마라 조이는 자신이 가면증후군(Imposter Syndrome)에 걸린 것 같았다고 했다.
가면증후군이란 자신의 성공이 운으로 인해 우연히 얻어졌다고 생각하며, 언젠가 본인의 무능함이 탄로 날까 불안해하는 심리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전세계에서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실력과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는데, 제일 권위 있는 그래미를 수상해 큰 도움이 됐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라는 말도 있다. 바로 첫 작품이 크게 성공하면 두 번째 작품은 그와 달리 매우 부진한 결과를 내는 상황을 말한다.
2학년을 뜻하는 소포모어(sophomore)와 징크스(jinx)가 결합된 단어다. 역대 그래미 신인상 수상자 중에도, 수상을 기점으로 대중의 인기나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그래미 신인상은 축복이 아닌 저주(curse)와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개인적으로 부디 사마라 조이만큼은 소포모어 징크스에 빠지지 않기를 기원한다. 그러길 바라는 마음에는 솔직히 그녀가 재즈 가수인 점이 큰 몫을 한다. 갈수록 정통적인 재즈를 그대로 이어가는 어린 아티스트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음악에서 재즈의 분위기나 화음, 또는 화성이 사라질 일은 없지만, 사마라 조이처럼 본연의 재즈 음악을 하는 경우는 드문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이런 아티스트를 내심 응원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최근에 눈여겨보는 1998년생 네오 소울 기타리스트 멜라니 페이(Melanie Faye)에게도 같은 마음이다. 부디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마라 조이와 멜라니 페이가 국경뿐만 아니라 세대를 넘어 재즈의 매력을 알리는 앰배서더 역할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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