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한 계산이 필요한 골프는 바람, 고도, 스윙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요하며, 신체적, 정신적 피로도가 극심한 스포츠다. 기분 좋게 필드에 나갔다가 “다시는 안 치겠다!” 다짐하며 귀가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을 것이다.
불편해 보이는 스윙, 무겁고 복잡해 보이는 골프 클럽, 그리고 무엇보다 비싼 레슨비와 골프장 피는 일반인을 골프 코스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고 비싼 골프에 열광하는 것일까?
골프의 역사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형식과 모습의 ‘골프’는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었다. ‘골프(golf)’라는 용어도 스코틀랜드 고어로 ‘치다’를 뜻하는 ‘고프(goulf)’에서 왔다. 13세기 중엽 양치기들 사이에서 시간을 때우는 놀이 정도로 인식되던 초기 골프는 점차 지팡이가 클럽의 모양새를 갖추어 가고, 돌멩이가 매끄러운 골프공으로 탈바꿈하며 현대 골프의 모습으로 바뀌어 왔다.
15세기 무렵에는 잉글랜드와 긴장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군사 훈련은 하지 않고 골프만 친다는 이유로 스코틀랜드 왕인 제임스 2세가 골프 금지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그 뒤를 이은 제임스 3세와 4세도 골프 금지령을 선포한 적이 있다. 잉글랜드와 강화 조약을 맺은 1502년에 비로소 금지령은 폐지되었다.
이후 19세기 말까지 골프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품은 영국의 스포츠였다. 그러다 19세기부터 실력이나 성능, 경제 규모 등 여러 부문에서 치고 올라온 미국이 20세기부터는 골프의 종주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골프의 규칙
골프는 기본적으로 코스의 티잉 그라운드(Teeing ground, 출발지점)에서 출발해 다양한 클럽으로 공을 쳐가며 해당 코스의 홀 안에 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규 라운드는 18홀이다.
티샷은 보통 로컬 룰에 따라 연장자가 먼저 치거나, 비거리가 긴 사람이 먼저 치거나,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한다. 그다음 샷부터는 홀이 위치한 그린에서부터 가장 먼 골퍼가 먼저 샷을 하며 공동의 거리를 좁혀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다음 홀에서는 이전 홀에서 스코어가 낮은 사람(더 잘 친 사람)이 먼저 티샷을 하는데, 이를 오너(Honor)라고 부른다. 전 홀에서 잘 친 것에 대한 우대이며 특권인 것이다.
경기에서 사용하는 클럽은 최대 14개여야 하고, 골프공이 훼손되거나 코스를 이탈하지 않는 이상 홀이 끝나기 전에는 사용하는 볼을 바꿀 수 없다.
골프 대중화의 역사
세상에는 8,000여 가지의 스포츠가 존재한다고 한다. 여기에 정식 스포츠는 아니지만 운동이 주된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포함하면 9,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골프를 우선으로 꼽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1990년대 말 타이거 우즈는 PGA에서 막강한 돌풍을 일으키며 소위 “슈퍼스타 이펙트(Superstar Effect)” 또는 “타이거 효과(Tiger Effect)”로 일컬어진 골프 붐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효과는 값비싼 비용과 스포츠의 난도 등 상대적으로 높은 골프의 진입장벽으로 인해 단기간에 시들었다.
2020년대 초까지 골프는 여러 지표에서 연간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었는데, 골프의 최강대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조차 2003년부터 2018년 사이에 골퍼가 22% 감소했고, 2005년부터 2018년까지는 약 1,243개의 18홀 코스가 사라졌다.
코로나로 인기가 급등한 스포츠, 골프
골퍼와 코스의 내리막을 겪던 골프 산업은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전염병의 유행과 여러 국가의 봉쇄 조치로 인해 “부활의 해(a year of resurgence)”라고 불리는 급등 현상을 맞이했다. 코스와 경기 특성상 ‘사회적 거리두기’가 근본적으로 가능한 몇 안 되는 스포츠가 골프였기 때문이다. 골프 코스는 코로나 기간 동안 건강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사업장에서 불가한 비즈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NGF(National Golf Foundation) 회장 조 베디츠(Joe Beditz)는 타이거 효과를 언급하며 "세기가 바뀐 이후 골프 사업에 이렇게 많은 활동과 낙관이 있었던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골프 관광 솔루션(Golf Tourism Solutions)의 CEO 빌 골든(Gill Golden)도 "열성적인 골퍼들은 당연히 골프를 더 많이 치고, 덜 열성적인 사람들도 골프를 전보다 많이 치고, 초보자들은 처음으로 골프를 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오늘날의 골프는 온라인에서도 다양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으며, 팟캐스트, 영상 등 여러 종류의 콘텐츠를 낳고 있다. 이는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골프를 처음 소개받고, 시작해보고자 하는 다짐을 얻기까지의 진입장벽이 훨씬 낮아졌다는 뜻이다. 골프 시장이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골프는 어디에 좋을까?
골프의 장점은 크게 개인 건강과 대인관계의 개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골프를 하면 집중력과 섬세한 판단력을 통해 정신력을 연마할 수 있으며, 반복된 운동을 통해 신체를 강화할 수도 있다. "골프와 신체 건강: 체계적인 리뷰(Golf and Physical Health: A Systematic Review)"에서는 골프가 근골격계 및 심혈관 건강을 개선할 수 있음을 의학적, 과학적으로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골프는 야외에서 장시간 벌어지는 스포츠인만큼, 혈압을 낮추고, 수면의 질을 개선시키고, 우울감을 낮추고, 햇빛에 더 많이 노출되어 칼슘의 흡수를 돕는 비타민 D가 체내에 증가하고, 암을 예방하고,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등의 기능도 있다. 요컨대 골프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 개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스포츠다.
더불어 골프는 기본적으로 같은 코스를 도는 다른 사람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경험을 공유하는 스포츠다. 서로 숨 가쁘게 경쟁하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골프를 치면서 훨씬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이미 여러 연구들이 스포츠를 통해 획득한 자아 및 집단 정체성과 관련된 이해나 공감 능력들은 장기적인 효과를 낸다는 걸 말하고 있다.
골프 코스에서 비즈니스를 성사시키는 사업가나, 동료나 지인들과 골프를 치며 유대감을 쌓는 일반 골퍼들 모두 능동적으로 골프의 사회적 기능을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 골프의 역사와 현황
한국에서 골프는 아직 주류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충분히 그에 가까워졌다고 할 만큼 인기가 많은 스포츠다. 뉴욕 타임즈는 한국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골프 시장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은 단연 여성 골프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여성 프로스포츠 협회 중 하나인 LPGA에서 한국 골프의 위상을 보이고 있다.
일반 대중들에게 LPGA가 처음 소개된 건 아마 박세리 선수부터였을 것이다. 대전 출신 박세리 선수는 1998년 LPGA 우승을 차지하며 역대 최연소 US 여자오픈 챔피언 기록을 세웠다. 그 기록은 2008년에 깨졌는데, 주인공은 바로 19세 11개월 17일이었던 박인비 선수였다.
박인비 선수는 주로 LPGA 투어에서 지금까지 총 21승을 거두고 있다. 박세리 선수가 커리어 통산 LPGA 투어에서 25승을 거두었으니, 아직 한창 현역인 박인비 선수가 그 기록을 언젠가는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박세리, 박인비 선수처럼 스타 선수가 한 두 명인 시대도 아니다.
2017년에는 LPGA 투어 ‘올해의 선수’ 상을 박성현 선수와 유소연 선수가 공동으로 수상했다. 이듬 해에도 박성현 선수는 3위를 차지했다.
2019년에는 이정은 선수가, 2020년에는 김아림 선수가, 2021년에는 고진영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 밖에도 전인지 선수, 김세영 선수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손에 꼽기 어려울 만큼 많다. 한 때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우승을 주고받던 LPGA를 2000년대 후반부터는 대한민국이 양궁처럼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만큼은 아니지만 남성도 골프 스포츠에서 조금씩 성과를 보이고 있다.
훌륭한 선수들이 많지만 지금 시점에 특히 주목해야 할 선수는 바로 김주형 선수(미국 이름은 톰 킴(Tom Kim)이다)다.
그는 올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Shriners Children’s Opne)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PGA 투어에서투어에서 개인 통산 두 번째 우승을 거두었다.
1996년에 타이거 우즈가 달성한 이후, 21세가 되기 전에 골프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PGA 투어에서 2승을 거둔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는 톰 킴의 급부상이, 박세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내 한국 남성 골퍼들의 전성기를 낳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특히 김주형 선수가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에서 우승할 때의 시청률이 다른 한국 남성 우승자들에 비해 현격히 높았던 점을 얘기하며, 제2차 골프의 대중화를 기대하기도 했다.
과연 한국 골프는 한 때 타이거 우즈가 일으킨 대중화와, 박세리가 일으킨 전성기와 같은 붐을 다시 한번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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