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LA에 왔을 때부터 ‘주말에 한 번 가 봐야지’하는 마음을 가졌는데, 결국 만 1년이 다 되어서야 라크마(LACMA) 미술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일산 호수공원으로부터 걸어서 10분 거리에 살 때도 고양국제꽃박람회에 간 적은 손에 꼽는데, 가까울수록 가기 힘든 건 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아무튼 내리던 비가 잠시 멈춘 주말에 한가로이 라크마를 거닐면서 여러 예술 작품에 푹 빠졌다가 나오니 이만한 힐링이 또 없다. 라크마 미술관이 LA 관광명소로 꼽히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인간은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이따금 문화생활을 하며 살아야 하는구나 싶었다.
LA 거주자는 평일 오후 3시 이후부터 무료입장인 데다가, 뱅크오브아메리카 카드 소지자는 매달 첫째 주말이 공짜라고 하니, LA를 떠나기 전에 꼭 다시 한번 방문해서 이번에 리모델링 중이라 보지 못한 전시 공간들까지 다 소화하고 떠나리라.
라크마(LACMA) 위치와 주차
라크마는 LA에서 미드 윌셔(Mid-Wilshire)라고 불리는 지역에 있다. 산타 모니카와 베니스 비치가 있는 해변과 다운타운 사이 중간 즈음에 있고, 한인타운과 붙어있다. 라크마는 미드 윌셔에 있는 더 그로브(The Grove)랑도 무척 가깝다. 그래서 단기로 LA 여행을 오는 관광객이라면 더 그로브와 라크마를 같은 날에 구경하는 스케줄로 하루를 구성해도 괜찮을 것 같다.
라크마의 주소는 "5905 Wilshire Blvd, Los Angeles, CA 90036"이고, 차로 이동하는 경우에는 라크마 주차장인 "Pritzker Parking Garage"로 주소지를 찍고 가면 된다. 다만 주차비는 라크마 시즌 회원에게만 무료이고, 관람객들에게는 유료로 제공한다. 주차비는 $20로 싼값이 아니니, 가능하다면 근방에 무료 주차장이나 스트릿 파킹을 찾는 걸 추천한다.
라크마(LACMA) 미술관이란?
라크마(LACMA)라고 불리는 미술관의 정식 명칭은 LA 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s)이다. 1961년에 설립되었고, 고대부터 현대까지 15만 점에 달하는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미국 서부지역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미술관이라고 한다.
라크마 미술관은 단독 미술관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20 에이커(약 24,480평)에 달하는 대규모의 캠퍼스를 형성하고 있는데, 브로드 현대미술관(Broad Contemporary Art Museum)과 레즈닉 파빌리온(Resnick Pavilion), 그리고 아카데미 박물관(Academy Museum)이랑 라 브레아 타르 연못과 박물관(La Brea Tar Pits and Museum)이 캠퍼스에 속해 있다.
지금 라크마를 비추하는 이유
결론부터 가감 없이 말하자면 지금 라크마는 반쪽뿐인 상황이다. 물론 나는 LA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지만, LA에 단기여행을 온 사람이라면 지금 라크마를 구경하는 게 마냥 좋지 만은 않을 것 같다.
서부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하지만 지금은 부지의 1/4 가량을 차지하는 공간이 공사 중이다.
기존에 라크마의 영구 소장품들을 전시하던 4개의 건물을 철거하고, 데이비드 게펜 갤러리(David Geffen Gallery)라는 이름의 단독 건물을 세우고 있는데, 2024년 말에 완공 예정이다. 수많은 영구 소장품은 돌아가면서 브로드 현대미술관과 레즈닉 파빌리온에 일부 전시 중이다.
그래서 지금 라크마 티켓으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은 브로드 현대미술관과 레즈닉 파빌리온, 두 군데다. 아카데미 박물관과 라 브레아 타르 연못의 내부와 공원부지를 걸어 다닐 수는 있으나 작품들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브로드 현대미술관
티켓을 구매하고 뒤를 돌아 아카데미 박물관 쪽을 향하면 왼쪽에 3층으로 된 브로드 현대 미술관이 있고, 오른쪽에 1층 건물인 레즈닉 파빌리온이 있다.
브로드 현대 미술관의 1층에는 대형 조형물이 두 개 전시되어 있었고, 2층에는 컴퓨터와 디지털, 그리고 코딩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 작품들이(<Coded : Art Enters the Computer Age>), 3층에는 현대 미술작품들(<Modern Art>)이 전시되어 있었다. 1층과 2층의 절반은 리모델링 중이었는데 4월 둘째 주부터 완전히 개방될 예정이다.
브로드 현대 미술관을 관람할 때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바로 3층으로 올라가 내려오면서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3층에는 출입 인원을 4명으로 제한하는 작은 전시장이 하나 있어 먼저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순서가 될 때까지 3층을 구경하는 게 좋다.
출입 인원을 제한하는 전시장의 이름은 <더 센트럴 메리디안(The Central Meridian)>이다. 내부는 다소 공포스럽기까지 한 분위기를 풍기며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차고다. 차고에는 차량을 정비하는 용품들뿐만 아니라 갖은 잡동사니들이 있고, 한편에는 화학자로 추정되는 차고 주인의 작은 작업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대중에게 익숙한 미술 작품들은 대부분 3층에 있다. 피카소, 몬드리안, 카딘스키, 마그리트, 호크니, 자코메티의 작품들이 있고,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들은 한 방을 전용으로 차지하고 있다.
레즈닉 파빌리온
레즈닉 파빌리온에는 전시관이 지리적, 문화적 세계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아프리카와 노예제도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전시된 공간, 아시아와 옻칠 가구들이 모인 전시관, 제3의 세계를 표현하는 초월주의 작품들이 있는 전시관들이 있었다. 현대의 시공간을 구성하는 여러 세계의 뿌리를 엿볼 수 있는 구성이었다.
다만 레즈닉 파빌리온에도 꽤나 큰 공간이 리모델링 중으로 출입을 막아 적잖이 아쉬웠다.
라크마 기념품 가게는 레즈닉 파빌리온에 있다. 그리고 이우환 작품이나 조선시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그런지 브로드 현대미술관보다 더 친숙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널찍한 공간과 단층이었던 점도 한몫 했을 것이다.
라크마 캠퍼스
라크마 캠퍼스는 마냥 거닐기에도 좋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피크닉을 하기에도 좋다. 게다가 외부에도 유명한 전시품이나 볼거리들이 널려 있고, 외부 공간은 관람 티켓 없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니, 꼭 보고 싶은 작품이 있는 게 아니라면 가볍게 산책 삼아 놀러 와도 괜찮을 것 같다.
라크마 외부 공간에는 우선 가장 상징적이고 인기 있는 전시품인 “어반 라이트(Urban Light)”가 있다. 202개의 가로등으로 구성된 조형물인 어반 라이트는 언제나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날씨가 좋은 날에는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예비부부가 웨딩사진을 찍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아무래도 가로등을 활용한 전시품이다 보니, 조명을 밝히는 저녁에 더 화려하고 예쁘다.
공중에 대형 바위를 띄운 “공중에 뜬 돌(Levitated Mass)”도 유명하다.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통로 위에 340톤의 바위를 얹어 놓은 전시품인데, 날씨에 따라 길을 막는 날도 있다. 그래도 360도 관람이 가능하고, 충분히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 바위 아래를 걷지 못하는 게 크게 아쉽지는 않을 것이다.
라 브레아 타르 핏 쪽으로 걸어가면 타르 연못과 화석 발굴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사이트도 구경할 수 있다. 타르 뮤지엄 쪽에는 푸른 잔디가 깔린 공간이 넓어 날씨가 좋을 때는 사람들이 피크닉을 하기도 한다. LA에는 한국처럼 시내에 걸어 다닐 만한 산책로가 많지 않은데, 썩 괜찮은 공원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총평
정리해 보자면 LA에 단기여행을 오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2025년까지는 라크마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미술관을 꼭 구경하고 싶다면 지금은 라크마보다는 게티센터(Getty Center)가 낫겠다. 다만 중장기 여행으로 왔거나, 그로브에서 쇼핑을 하고 난 뒤 갈 곳을 찾고 있거나, 날씨가 너무 좋아 산책이나 피크닉을 하고 싶다면 추천할 만하다.
라크마는 미술 작품만 빠르게 구경하면 2시간 정도 소요되는 규모이고, 여유롭게 작품 감상도 하고 캠퍼스도 거닐 계획이라면 3~4시간 정도 잡으면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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