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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들어야 할 최고의 기타리스트 스티비 레이 본 (Stevie Ray Vaughn)

저피 2020. 4. 2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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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de’와 ‘mean’.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의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무례하고’, ‘비열하다’이다. 부정적인 함의를 갖고 있다. 하지만 두 단어가 떠오르는 이유는 결코 그가 버릇없고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다.

 

스티비 레이 본

 

서너 번째쯤 나올 법한 정의에 따라 그가 ‘거칠고’, ‘다루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두 단어는 사전 정의 순서상 뒤로 갈수록 부정적인 의미가 희석된다. 그의 음악도 이러하다. 처음 들으면 조금 과하고, 불편하고, 시끄러울 수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보고 들으면, 길들이기 어려운 듯한 야생적인 매력에서 자유를 느끼게 된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야생의 기타리스트,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n)이다.

 

 

 

스티비 레이 본

내 첫 일렉트릭 기타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였다. 바디에는 알파벳 스티커로 내 이니셜인 ‘HJP’를 넣었다. 기타를 칠 때는 뒤꿈치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박자를 탔고, 집에서 연습할 때는 기타 헤드에 피우던 담배를 꽂기도 했다. 내가 지금 기타를 연습하는 건지, 스티비 레이 본 흉내를 연습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내게 역대 최고 기타리스트는 스티비 레이 본이다

 

친구들에게 얘기할 때 늘 자신 있었다.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는 스티비 레이 본이지.” 일렉트릭 기타라는 악기를 스티비 레이 본보다 잘 다루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를 ‘뮤지션’이라 부르기보다 ‘기타리스트’라고 콕 집어 부르고 싶었다.

 

스티비 레이 본은 악보를 제대로 볼 줄 몰랐다. 음악 이론에 빠삭한 것도 아니었다. 천재적인 연주 실력은 어려서부터 귀로 듣고 흉내 내며 익힌 것이었고, 실제로 쳐보면서 학습한 것이었다. 그는 이점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워낙 출중한 실력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기타를 치다, 품에 안은 채로 잠드는 게 익숙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작곡가로서 그의 능력이나, 아티스트로서 그의 표현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기타리스트로서 그의 자질을 더욱 높이 칭하려고 그를 ‘기타리스트’라고 콕 집어 불렀다. 아마 스티비 레이 본도 그렇게 기억되길 바랐을 것이다.

 

끈적하다. 그가 연주하는 음들은 듣는 귀와 보는 눈에 찰싹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음끼리도 고리로 연결시킨 것이 아니라, 마치 고온납땜으로 붙여버린 것만 같다. 스티비 레이 본과 그의 기타도 한 몸이다.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기타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했다. 그는 기타 사운드나 감촉에 대한 자신의 취향을 너무나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비싸거나, 화려하거나, 소리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여기저기 뜯어 고친 그의 기타는 부위(헤드, 넥, 바디, 픽업 등등)마다 연식이 달랐다. 세세한 부위마다도 확고한 취향이 있을 만큼 그는 기타라는 악기를 면밀히 이해하고 사랑했다.

 

기타마다 애칭이 있었다. 그는 대부분의 녹음과 공연에서 ‘Number One’이라는 기타를 사용했는데, 부와 명성의 정점을 찍을 때도 그 선택에는 변함이 없었다.

 

 

 

스티비 레이 본의 연주곡 레니(Lenny)

두 번째로 애용했던 기타는 ‘Lenny’라 부르던 기타였다. 1980년, 동네 전당포에서 스티비 레이 본은 그 기타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하지만 기타 가격은 $350정도였고, 그에게는 기타를 살 돈이 없었다. 결국, 그의 아내가 나섰다. 그녀는 일곱 명의 친구들로부터 $50씩을 갹출해 기타를 샀다. 그리고 남편의 생일에 그 기타를 선물했다.

 

스티비는 아내의 이름인 Lenora를 따서, 선물 받은 기타에 ‘Lenny’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선물 받은 기타를 가지고 아내를 위해 ‘Lenny’라는 곡을 썼다. Lenny로, Lenny를 위한, Lenny를. 그날 그에게 사랑과 기타와 음악은 모두 Lenny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Lenny로 가득한 밤이었다.

 

그래서 <Lenny>를 추천하고 싶었다. 물론 스티비 레이 본하면 <Pride and Joy>나 <Mary had a little lamb>, <Cold Shot>, <Crossfire> 같은 노래가 먼저 언급되고, 연주곡으로는 <Rude Mood>가 그의 실력을 더 잘 보여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인 만큼, 이 곡들을 소개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적잖다.

 

하지만 기타라는 악기에 대한 그의 열정이 가장 진하게 밴 곡은 <Lenny>가 아닐까 싶어 추천한다. 스티비는 <Lenny>를 꼭 Lenny로만 연주했다. 음악과 악기는 그렇게 끈적하게, 찰싹 붙어있었다. 요컨대 이 곡은 뮤지션이 리스너에게 들려주는 음악이라기보다, 기타리스트가 기타와 주고받는 대화인 것이다.

 

바흐는 악기에 관해 이런 명언을 남겼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매우 쉽다. 제때에 알맞은 건반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악기가 알아서 할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인 것 같다. 실제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악기고, 그 소리는 사람이 내는 소리보다 더 일정하고 안정적이다. 연주자는 바흐 말대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잘 누르고, 켜고, 뜯고, 튕기고, 치기만 하면 된다.

 

한편, 스티비 레이 본을 생각하면 이는 완전히 틀린 말 같다. 악기는 ‘무엇을’이나 ‘언제’보다는 ‘어떻게’의 영향을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무엇을 언제 누르고 연주하는지보다, 어떻게 그 음들을 표현하고, 또 어떻게 그 악기를 대하는지가 핵심이다. 연주자가 자신을 악기에 귀속된 기술자로 생각할 때와 악기를 자신과 동일화할 때는 결코 같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직접 느껴보고 싶다면 <Lenny>를 찾아 듣기 바란다. 음악 신청을 받아 틀어주는 LP 바에서도 언제나 옳은 선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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